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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암자 순례 세 번째 이야기는 '취운암'입니다.
취운암에서 가장 눈여겨 볼 것은 바로 본전인 취운전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단청'입니다.
다른 암자와 다른 취운전 단청의 매력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통도사 율원으로, 선원으로 역할을 맡고 있는 취운암의 숨은 이야기도 들려드립니다.
취운암, 2017년 가을
취운암, 율(律)과 선(禪)을 취하다
보타암을 벗어나 200m가량 오르막길을 걷다 취운암(翠雲庵)으로 들어가는 취운교를 건넜다.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조용한 암자 분위기와 어울렸다. 온화한 기풍을 지닌 보타암과 달리 취운암은 절도 있는 품격이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취운암은 영축총림 통도사의 율원(律院)이 있는 암자다.
불교에서 율사(律師)를 양성하는 전문교육기관인 율원은 보통 강원(講院, 사찰에 설치한 교육기관)을 마친 스님 가운데 특별히 계율 연구에 뜻을 지닌 스님들이 부처님 율법을 공부하는 곳이다. 율원은 통도사를 창건한 신라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승려들의 기강을 세우고 올바른 율법에 따라 구족계(具足戒)를 받게 하려고 금강계단을 설립한 후 개설했다고 한다.
암자 주차장 입구에 들어서자 단풍나무 한 그루가 위엄 있게 서 있고, 그 뒤로 엄격한 계율을 눈으로 보여주려는 듯 수직으로 흔들림 없이 서 있는 전각 기둥이 강건하게 찾는 이를 맞이한다. 2층 전각 상단 중앙에는 ‘취운암’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지만 부처를 모시는 법당이 아니라 법회, 강연 등을 여는 대흥루(大興樓)라는 누각이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계단을 오르면 맞은편에 낮은 지붕의 전각이 눈에 들어온다. 속세와 경계를 두려는 듯 전각 주위로 나무 울타리를 두른 영축총림 율원은 1984년 총림 지정 후 통도사 수도암에 개원해 내부적으로 운영해오다 2005년부터 취운암으로 옮겨 개원했다.
취운암은 법당 뒤편 작은 오솔길을 따라 언덕을 사이로 통도사 본사와 연결돼 있다. 본사와 가까운 암자라는 이유에서였을까? 취운암에 율원을 설치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취운암에 율원을 설치한 것은 단지 가깝다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취운암은 1644년(인조 22) 우운당(友雲堂) 진희(眞熙) 대사가 통도사 본사 대웅전을 중건하고 6년 뒤 1650년(효종 1)에 취운암을 창건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창건 연도는 해석이 두 가지로 나뉜다.
1961년 개수공사 당시 때 동편 합각(合閣) 머리 서까래 3개에 쓰여 있는 ‘순치 2년 갑신 오월…’(順治二年甲申五月…)이라는 묵서명(墨書銘)을 발견해 건립연도를 알 수 있었다. 여기에서 順治二年(순치 2년)은 을유년(乙酉年)으로 인조 23년 서기 1645년이 맞지만 甲申(갑신)은 인조 22년 서기 1644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도사 홈페이지와 안내문에는 조선 인조 22년(서기 1644년)으로 기록했지만, 문화재청과 인터넷 포털 자료 등에서는 인조 23년(서기 1645년)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후로 1795년(정조 19) 낙운당(洛雲堂) 지일(智日) 대사가 중건했고, 1969년 태일(泰逸) 스님이 중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진희 대사가 취운암을 창건할 때 통도사 대웅전을 짓고 남은 목재와 재정으로 지었다는 기록을 생각하면 통도사 대웅전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유서 깊은 암자다.
취운암 역사를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는 법당 뒤편에 있었던 역대 고승의 부도들이다. 모두 14위가 모셔져 있었는데 1980년대 산내 흩어져 있던 부도를 현재 부도원으로 모으면서 옮기게 됐다. 다른 암자보다 많은 부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과거부터 깨달음을 얻은 고승들이 취운암에서 수행해왔다는 증거다.
취운암은 또한 한국 전통 가치인 효(孝) 사상을 품은 암자기도 하다. 진희 대사가 취운암을 창건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외동이었던 아들이 출가한 후 홀로 남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함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취운암, 2017년 겨울
계단에 올라서면 양편으로 취운전(翠雲殿)과 대흥루가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두 전각은 팽팽한 긴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앞서 보타암이 포근한 느낌을 주는 암자였다면 취운암이 주는 긴장감은 율법의 엄격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공간 구조다. 두 전각 사이에는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을 뿐 텅 빈 공간이다. 어떤 잡념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엄숙함마저 느껴진다.
취운전과 대흥루는 얼핏 닮은 듯 보이지만 전혀 다른 건축양식을 취하고 있다. 두 전각을 눈여겨 들여다보며 그 차이를 확인하는 일은 취운암을 접하는 색다른 경험이다.
먼저 지붕부터 다른 양식이다.
취운전은 맞배지붕이지만, 대흥루는 팔작지붕으로 돼 있다. 보통 암자에서 주불전(主佛殿)에 해당하는 법당을 팔작지붕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과 달리 취운암 주불전인 취운전은 맞배지붕으로 더 간결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현대식 건물에 전통 방식을 접목해 건축한 대흥루와 전통문화재로 지정받은 취운전은 그 겉모습부터 차이를 보이는 셈이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취운전이 가진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경남 유형문화재 제599호 취운전
본당인 취운전은 2016년 12월 1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99호로 지정됐다. 취운전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숙종 12년(1686년)에 초창됐고, 171년이 지난 철종 8년(1857)에 중수가 있었으며 근세에도 지속적으로 보수해 오다 2008년 완전히 해체한 후 새로 지은 전각이다.
2008년 보수 당시 인법당(人法堂, 법당과 승려가 머무르는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전각) 형태였던 취운전에 기존 주지실, 법당, 부엌, 툇마루 등을 없애고 전부 법당으로 고쳐 삼천불단을 조성했다. 물론 기존 전각에 사용했던 건축부재(공포 등 구성재)는 옛것 그대로 남겨 뒀다. 또한, 건물을 해체보수하면서 나온 ‘취운암중수상량문(翠雲庵重修上樑文)’을 통해 창건 연대와 중수 기록을 정확히 알 수 있어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무엇보다 취운전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불전의 장엄을 나타내려고 사용한 용, 봉황 등 단청조각과 부재의 치목(마름질) 등이 매우 훌륭하고, 특히 공포의 치목과 조각 수법이 우리나라 다른 불전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희귀한 방식이어서 건축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취운전 단청은 여느 암자와 달리 음양각으로 조각하고 나서 색을 입혀 입체감을 더하고 있다. 사진 아래 대흥루 단청과 비교하면 취운전 단청이 예사롭지 않게 정성을 들였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음(陰)과 양(陽)을 적절히 조화시킨 음양각 기법으로 공포(栱包,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 끝 하중을 받치려고 기둥머리 같은 데 짜맞춰 댄 나무 부재)를 꾸몄는데 대흥루와 비교하면 그 차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평면으로 자른 나무면에 색을 입힌 대흥루와 달리 취운전 공포는 나무면에 음양각으로 문양을 일일이 새기고 나서 그 위에 색을 입혀 입체감을 더했다.
취운전 삼천불단
취운전 내부로 들어서면 황금빛으로 물든 삼천불(三千佛)이 삼존불단 뒤로 모셔져 있다. 보통 후불탱화를 불단 뒤에 두는 것과 달리 취운전은 삼천불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삼천불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의미하는 각각 1천불을 일컫는 것인데, 대승불교에서 시간상으로 항상 무한한 불상이 존재한다는 근본사상을 상징한다.
그리고 천장에는 외벽 단청과 마찬가지로 음양이 조화로운 문양의 조각이 법당을 꾸미고 있다. 한참이나 천장을 올려다보며 빛을 따라 물결치듯 조화로운 조각에 빠져들었다. 연꽃잎 하나하나 정성스레 조각하고 나서 색을 입힌 단청은 바람에 흔들리는 연꽃밭에 와 있는 듯 오래도록 감상하기에 충분하다.
취운전 내부 단청 역시 음양각으로 조각하고 나서 색을 입힌 형식으로 돼 있다.
취운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경남 문화재자료 제364호로 지정한 ‘통도사 취운암 지장시왕탱’(通度寺 翠雲庵 地藏十王幀)이다. 조선 후기 불화로 1896년 통도사 백운암에서 조성하고 나서 취운전에 모시고 있다. 지장보살 좌상을 중앙에 배치하고, 좌ㆍ우측에는 두광을 갖춘 무독귀왕(無毒鬼王)과 도명존자(道明尊者)를 비롯해 시왕, 판관 등을 각각 배치하고 있다.
아쉽게도 보존 상태가 좋지 않지만 19세기 지장시왕탱화 구도와 채색 기법을 잘 보여 줘 조선시대 불교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자료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불교 호법신(護法神)들을 묘사한 신중탱화 역시 여느 암자와 달리 제석천(帝釋天,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을 중심으로 104위 호법신을 모두 그려 넣어 웅장한 기운을 전하고 있다.
취운전 단청과 삼천불, 그리고 탱화가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뒤로하고 나섰다. 다시 텅 빈 공간 너머에 대흥루가 보인다. 취운전과 마주한 대흥루는 일반 불자를 위한 법회는 물론 강연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율원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취운암은 사실 일반 불자를 위한 선원으로 일찍이 운영해 왔다.
대흥루 1층에는 취운선원이 있고, 옆 건물은 불자를 위한 선열당이다.
수행과 포교 일선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는 취운암은 대흥루 1층에 취운선원, 암자 좌우편에 보살선원과 선열당((禪悅堂)이 2천 평이 넘는 부지에 전체 암자를 이룬다. 통도사 암자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이곳에는 일반 불자와 보살, 그리고 율원에서 수행하는 스님까지 많은 이들이 수행에 정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감원인 상우 스님은 1969년부터 2014년까지 45년 동안 산문 밖을 나
가지 않고 한국 선불교 발전을 위해 ‘천봉선문대전’을 집필했다. 스님은 지금까지도 매월 첫째 주 일요일 취운전에서 일반 불자를 대상으로 선사들의 가르침과 수행 과정이 담긴 선문답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는 선문 특강을 이어오고 있다. 불교의 율(律)과 선(禪)이 조화를 이루는 교육도량의 면모를 갖춘 암자인 셈이다.
취운암 산신각, 2017년 가을
바람 소리가 경건하게 들리는 마당을 빠져나와 본당 뒤편 오솔길을 따라 산신각(山神閣)으로 향했다. 바람을 따라 사각거리는 나뭇잎 소리를 들으며 정성스럽게 닦은 돌계단을 오르면 이내 석축을 쌓아올린 터에 자리 잡은 산신각이 눈에 들어온다.
취운암 산신각은 높은 바위 위에 다시 석축을 쌓아 만들었는데 제단 뒤편 벽이 자연석으로 돼 있다. 그 자연석을 그대로 둔 채 산신각을 세우고 굴을 파 산신과 나반존자를 모신 것이 특징이다. 산신각 아래 커다란 바위가 쉼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전망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 줄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통도 8경 가운데 하나인 취운모종(翠雲暮鐘)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취운모종은 범종 소리가 영축산 자락과 수많은 계곡 풍경과 어울려 퍼져가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범종은 큰 사찰에서 인근 암자까지 퍼지도록 타종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 따라서 취운모종의 뜻은 취운암에 있는 범종 소리라기보다 통도사 본사에서 울리는 범종 소리를 취운암에서 들을 때 가장 아름답게 풍경과 어우러진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른 아침 해가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저녁 무렵 밝음과 어둠의 경계에 서 있을 때 은은하게 영축산을 어루만지는 범종 소리가 행여 들릴까 마음의 귀를 열어두고 한참을 산신각 바위 위에 서 있었다.
>>>④수도암, 검소한 수행의 기풍을 만나다(계속)
※이 글은 양산문화원 위탁을 받아 진행한 ‘통도사 암자 순례’ 책자 발간 사업에 제가 취재ㆍ수록한 내용을 양산문화원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모든 저작권은 양산문화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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