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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산내 암자 가운데 가장 작은 규모인 수도암은

이름처럼 '수도하기 좋은 기풍을 가진 암자'다

다른 암자처럼 찾는 이가 많지 않지만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수도암만의 매력이 있다.

 

수도암, 2017년 여름

 

수도암, 검소한 수행의 기풍을 만나다
 
취운암을 나서고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서운암과 백련암, 비로암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비로암 방향 오르막길에 접어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편에 수도암(修道庵)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날 수 있다. 수도암 가는 길은 산새 소리와 바람에 부대끼는 나뭇잎 소리가 기분 좋게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곧 수도암 주차장이 나오고 암자 입구 앞 소나무 아래 작은 쉼터가 보인다.

 

통도사 산내 암자 가운데 가장 작은 규모인 수도암은 이름처럼 ‘수행하기 좋은 암자’다. 통도사 본사와 가까운 편에 속하는 암자지만 오히려 깊은 산중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암자 주변이 온통 숲으로 둘러싸인 수도암은 1372년 고려 공민왕 21년 이관(爾觀) 대사가 창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정신(定信) 대사가 중건했다고 한다.

 

수도암, 2017년 가을

 

한눈에 보기에도 본당과 산신각, 요사채(寮舍채)로 구성된 암자는 검소하지만 굳건한 수도자의 기풍을 전한다. 멈추지 말고 수행에 전념하라는 듯 암자 이름마저 수도암이다. 본당 앞에 서 있는 수려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암자 전체 분위기를 말해주는 듯하다. 마당에는 화려하지 않지만 정성이 느껴지는 들꽃과 작은 나무들이 찾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

 

수도암은 통도사 암자 가운데 여전히 인법당(人法堂)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암자다. 본당에 들어서면 석가모니불과 좌우로 관음보살, 세지보살이 모셔져 있고, 입구에 스님이 거처하는 방으로 이어지는 문이 보인다.

수도암은 옛 모습 그대로 여전히 인법당 형태의 암자로 남아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수도암은 석가모니불과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세지보살(勢至菩薩)을 모시고 있다. 일반적으로 석가모니불 좌우로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모시는 경우와 달리 수도암에서 관세음보살과 세지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신 이유는 감원인 중선 스님의 뜻이다.

 

중선 스님은 1994년부터 수도암에서 수행해왔다. 원래 좁은 언덕 위에 있던 암자 주변은 모두 내리막으로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보통 비바람이 몰아쳐 나무가 쓰러질 것을 대비해 건물 가까운 곳에 큰 나무를 심지 않는데 수도암 은행나무가 법당 가까운 곳에 서 있는 이유다. 워낙 좁은 공간에 암자를 짓다 보니 법당과 멀찍이 떨어져 나무를 심을 공간조차 없었던 셈이다.

 

수도암, 2017년 가을

 

중선 스님이 감원으로 암자를 맡으면서 내리막 언덕을 돌과 흙으로 메워 평탄하게 앞마당을 만들었다. 중건 당시 낡은 법당 지붕과 단청을 정비하는 도중 갑자기 서까래가 무너지면서 불상이 부서지고 말았다. 중선 스님은 다 부처님 뜻이라고 생각하고 새롭게 석가모니불상을 구해 법당에 모셨다. 그때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과 세지보살을 함께 모신 것이다.

 

중선 스님은 수행의 근본을 관(觀)이라고 말한다. 관은 자신 내면에 있는 마음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는 일이다.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마음속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관음(觀音)의 중요함을 드러내고자 관세음보살을 모셨다.

또한, 내면의 소리에 끊임없이 귀 기울이는 노력을 통해 수행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중선 스님은 말한다. 세지보살(勢至菩薩)은 관을 쌓아 부처의 법력을 얻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결국, 관을 통해 지혜가 생긴다는 뜻을 담고 있다. 수도암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우문(愚問)에 한 마디로 ‘수행하기 좋은 곳’이라고 답한 스님의 깊은 뜻을 미욱하나마 헤아려본다.

 

산중 깊은 곳에 와 있는 듯 숲으로 둘러싸인 수도암은 실제 최근까지도 차량이 오갈 수 없는 곳이었다. 본사에서 취운암과 안양암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겨우 닿을 수 있는 암자였던 탓에 예전부터 고시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던 곳이다. 1992년이 돼 서야 차량이 오가는 길이 났다. 지금은 깔끔하게 포장한 우회도로와 주차장까지 마련돼 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우회도로라고 해봤자 접근이 어려운 비포장도로였다.

고시 공부를 위해 수도암을 찾은 이들의 사연도 흥미롭다. 1985년 통도사 산문이 현재 위치로 옮겼을 때 매표소에서 일하던 아가씨와 수도암에서 공부하던 젊은이가 눈이 맞아 결혼까지 이른 일이 있었다고 한다. 고시를 통과한 후 지금은 창원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데 처가가 하북면이라 가끔 자신이 공부하고 결혼의 연을 맺은 수도암을 들리곤 한다는 것이다.

 

3년 전에는 점잖은 중년신사 한 분이 암자를 촬영하고 있어 스님이 물어보니 예전에 이곳에서 공부해 현재 서울에서 판사로 일하는 형님 부탁으로 사진을 보내기 위해 수도암을 찾았다는 사연도 재미났다.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따뜻한 차 향기와 함께 세월을 이야기하는 노스님 모습에서 수행도량으로 수도암이 가진 매력을 엿볼 수 있었다. 무심하게 쌓아둔 책더미 속에서 참 깨달음을 얻고자 정진하는 수도자의 모습도 함께 마음에 담아둔 채 법당을 나섰다.

 

수도암의 검소한 기풍은 중건 당시 목재를 이어 맞춰 세운 기둥에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가을 정취를 온몸으로 전하는 은행나무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가난한 암자지만 결코 수행이 모자라지 않은 수도암은 검소한 기풍을 가진 암자다. 중건 당시 본사에서 쓰다 남은 기둥을 이어붙인 흔적이 지금껏 남아 있는 본당에서부터 노스님이 정성으로 가꾼 암자 곳곳이 새삼 경건한 마음으로 다가왔다.

 

마당 한편 스님이 일군 텃밭을 보며 한평생 살면서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욕심이 욕심을 낳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다 그것에 얽매여 버리는 삶을 아무 자각 없이 흘려보내듯 지내왔다는 생각에 미치자 마음속으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본당 뒤편으로 보이는 산신각에 올라 다시 수도암을 내려다보며 “욕심은 칼이나 독과 같으며, 불이 맹렬히 타는 것과 같다”며 경계한 부처의 말을 떠올렸다.

 

산신각에서 내려다본 수도암, 2017년 겨울

 

산신각을 내려와 다음 암자인 서운암(瑞雲庵)을 찾으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들어올 때 봤던 주차장 옆 절벽 위 소나무 사이에 만든 작은 쉼터가 새삼 다르게 보인다. 오가는 이들에게 잠시라도 쉼을 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리만으로도 계곡물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맑은 하늘 아래 겹겹이 보이는 소나무들 윤곽이 마치 첩첩산중 위를 떠도는 구름처럼 더없이 아름답다. 작은 일에 감사하는 마음이 수도암을 등진 걸음을 따라왔다. 
 
>>>서운암, 기다림의 미학을 배우다

 

이 글은 양산문화원 위탁을 받아 진행한 통도사 암자 순례책자 발간 사업에 제가 취재수록한 내용을 양산문화원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모든 저작권은 양산문화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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