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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사명암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불교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암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명암 감원인 동원 스님은 스승인 혜각 스님에 이어
단청장 무형문화재로 수많은 사찰의 단청을 꾸며왔습니다
사찰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단청의 아름다움이
다른 어느 암자보다 돋보이는 데다
암자를 둘러싼 자연환경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계절마다 다른 사명암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사명암, 2017년 가을
사명암, 불교 예술의 참맛을 보다
좌우로 하늘을 바라보며 자란 나무들 사이로 환한 빛줄기가 비친다. 오르막길을 지나 주차장 입구에 들어서면 확 트인 시야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감탄을 자아낸다. 영지(影池) 좌우로 정자가 균형을 잡고 있고 그 가운데 사명암(泗溟庵)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놓여 있다.
사명암은 암자에 들어서기 전부터 발길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풍경에 시간을 허락할 수밖에 없다. 잘 가꿔진 정원은 영지를 중심으로 좌우, 상하 모두 세련된 모습이다. 물론 세련됐다고 해서 인위적인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원래부터 제자리인양 갖춰진 모든 사물이 질서 있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영지에 비친 사명암, 2017년 가을
사명암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임진왜란 당시 구국승인 사명대사(泗溟大師)의 자취를 흠모해 1573년(선조 6년)에 이기(爾奇)와 신백(信白) 선사가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명대사는 이곳에 모옥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 금강계단에 봉안한 부처님 사리를 수호했다고 전한다.
영지를 건너 돌계단 난간에 서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암자를 바라보며 왼편에 서 있는 정자는 무작정(無作停)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오른편에는 일승대(日昇臺)라는 편액이 달린 정자가 있다. 그 아래 곱게 깔린 잔디 위로 대나무와 철쭉 등이 심어져 있다. 어디에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씨앗을 떨어뜨리고 꽃을 피운 들꽃도 고개를 내밀며 정취를 더한다. 바람에 따라 물결이 일렁이는 영지 위로 연꽃이 하늘거리며 자태를 뽐낸다.
암자 정문에 들어서기 전 영지를 바라보는 관세음보살은 찾는 이들을 앞서 반긴다. 오른편엔 나무지장보살(南無地藏菩薩),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이란 쓴 비석 4개가 보인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다 ‘사명암’이라는 편액이 걸린 문으로 들어갔다.
사명암의 단풍, 2017년 가을
사명암은 가을과 어울리는 암자다. 세상이 색(色)으로 물드는 계절, 사명암은 그 짧은 시간 속으로 함께 녹아 들어간다. 암자를 감싼 영축산이 색으로 물들고, 암자 안에 있는 꽃과 나무들이 색으로 옷을 갈아입을 때 사명암 역시 고운 빛깔의 색으로 물들어 간다.
찾는 이마다 감탄하는 사명암 영지 풍경은 당연히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 이후 중창하면서 당시 논이었던 곳에 영지를 조성하고 전각들을 새로 만들었다. 사명암 영지는 원래 논이었던 탓에 땅 아래에서부터 물이 올라온다고 한다. 긴 역사를 가진 암자지만 지금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사명암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사명암은 우리나라 불교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암자다. 자연의 색을 닮은 아름다운 단청과 불화는 모두 사명암 스님 작품이다.
먼저 혜각(慧覺) 스님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명암 감원이었던 혜각 스님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보유자였다. 스님은 단청 1인자로 불리던 이화응 대화상 문하생으로 입문해 단청 화업(畵業)을 익혔고 단청기술 개발과 전승, 후진 양성에 평생을 바친 우리 시대 대표적인 금어(金魚, 불화를 그리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호칭)였다. 특히 ‘금초(錦草) 12종’ 기법은 스님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혜각 스님은 단청장이기 앞서 수행자였다. 단청을 그리는 과정 역시 수행의 한 과정으로 봤기 때문이다. 스님은 말보다는 행(行)을 중요하게 여기고 제자들이 계율에서 어긋난 일을 하면 용서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자비보살’이었지만, 잘못을 목격하면 눈물이 쏙 나도록 야단을 쳤다고 한다. 제자들과 신도에게 ‘나한’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것도 이 때문이다. 여행을 좋아해 걸망 하나 둘러메고 산천을 만행(萬行)하는 것을 즐겼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손상좌와 함께 지리산을 거뜬히 종주했다고 한다. 자유로운 영혼 스스로 엄격한 계율을 지키며 단청 기술을 수행의 경지로 이끈 셈이다.
혜각 스님이 평생 손수 단청한 사찰만도 개성 안화사 대웅전, 수덕사 대웅전, 화엄사 각황전, 함경도 석왕사 대웅전, 함경도 귀주사 대웅전, 통도사, 불국사, 분황사, 직지사 등 100여 개 사찰 200여 동에 이른다. 1960년대 우리나라 국보 1호인 숭례문 복원 당시에도 스님의 손길이 거쳐 갔다.
1998년 혜각 스님 입적 후 그 뒤를 이어 스승의 길을 걷는 이가 바로 현재 사명암 감원인 동원 스님이다. 동원 스님 역시 스승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있다. 1966년 출가 전 전국을 유랑하다 부산에서 경주로 향하던 길에 우연히 통도사에 들르게 됐다고 한다. 처음 온 곳인데도 낯설지 않고 포근해 하루 이틀 사흘 머물다 아예 출가를 결심했다. 하룻밤 편히 자고 가려고 통도사를 찾은 일이 평생 수도자로, 단청장으로 길을 걷게 된 인연이 된 셈이다. 출가 후 행자 시절 방에 걸린 관음도를 펜으로 따라 그리는 모습을 본 홍법 스님이 자신을 혜각 스님에게 소개하면서 사제의 연을 맺게 됐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보유자인 동원 스님은 스승과 함께 90년대부터 사명암을 중창했다. 사명암 곳곳에 보석처럼 빛나는 불화와 단청 모두 두 사람의 합작품이다. 스승이 일러주고 제자가 깨우쳐 색을 통해 부처와 그 세계를 표현해온 것이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부처의 세계를 재연한 사찰만도 100여 곳이 넘고 통도사 곳곳에 그들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3천 명이 동시에 운집할 수 있는 통도사 설법전 역시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품격을 자랑하는 단청으로 유명하다. 사명암 영지 풍경이 이토록 아름다운 이유를 능히 짐작할 만하다.
사명암 극락보전, 2017년 가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사명암에서 아미타불을 모시는 본당인 극락보전(極樂寶殿)은 단청뿐만 아니라 건축 양식도 예사롭지 않다. 여느 암자보다 긴 기둥 위에 공포를 3단으로 쌓아 지붕 높이를 더했고, 서까래 위 부연(附椽, 목조건축물에서 처마서까래나 들연 끝에 덧얹는 짧은 서까래) 역시 각을 크게 줘 입체감을 더했다. 이런 방식은 영지 아래 멀리에서 바라볼 때 다른 전각보다 암자 중심인 극락보전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천천히 극락보전을 돌며 단청을 감상하다 본당 안으로 들어가니 좌정한 아미타불 양옆으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서 있다. 불단을 중심으로 벽과 천정에 불심(佛心)을 입힌 단청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법당 안 탱화 역시 섬세하면서도 힘이 느껴진다. 문득 처음 접한 아름다운 영지 풍경에 마음을 뺏겨 단청의 아름다움을 둘러보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명암 극락보전 내부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처럼 단청은 일정한 듯 보이면서도 변화무쌍한 색과 선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경이로운 마음가짐을 갖고 고개를 젖혀 단청에 깃든 정성을 하나하나 되짚어본다.
사명암에는 극락보전 외에도 영각(靈閣)과 칠성전(七星殿)이 있다. 극락보전을 나와 오른편으로 돌아나가면 작은 언덕 위에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와 나반존자, 신선을 모시는 칠성전이 있다. 반대로 왼편에는 사명대사와 혜각 스님 진영을 모신 영각이 있다.
사명암 무작정, 2017년 가을
이번에는 극락보전 앞에 서서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에 심취한다. 바깥에서 바라볼 때와는 또 다른 정취가 느껴진다. 어느덧 해가 머리 위를 넘어가며 그림자가 드리운다.
오른편에 ‘무작정(無作停)’이란 편액이 걸린 정자가 보인다. 이끌리듯 정자에 앉아 영지 풍경을 감상한다.
무작정이란 이름은 동원 스님이 ‘자유롭게 살려면 일을 만들지 말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스님 가르침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참을 멍하니 시간이 흘러가는 풍경만 바라봤다. 반복되는 바쁜 일상을 보내며 성취감을 얻는 것이 최선이라고 살아왔지만 막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있으니 오히려 가슴 한구석부터 충만함이 느껴진다.
사명암 일승대, 2017년 여름
무작정을 나와 일승대(日昇臺)로 걸어갔다. 햇살을 듬뿍 받아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 아래 정겹게 찌그러진 장독들이 놓여 있다. 맑은 빛깔을 반사하고 있는 약수까지 무심하게 놓여 있는 듯해도 그린 듯이 아름다운 풍경이다.
일승대는 혜각 스님의 은사인 희명 스님 호(號)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요사채 안쪽으로 들어와야 하는 일승대는 동원스님이 손님을 맞아 주로 다도실로 이용하는 곳이다. 일반인 출입을 금하는 곳이니만큼 들어가기 전 미리 물어보고 예를 갖춰야 한다. 동쪽 하늘에 해가 떠오를 때 그 빛을 받는 일승대 안에는 기둥과 도리에 온통 서각이 가득 걸려 있다. 어느 한 사람의 글씨가 아니라 편액 수만큼 다양한 서체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 가운데 경봉ㆍ구하ㆍ혜각 스님과 같은 통도사 고승들의 글씨가 있는가 하면 추사 김정희, 도산 안창호 선생 서각도 보인다. 서예와 칼이 만나 빚어내는 서각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부족한 한자 실력 탓에 그 뜻을 일일이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 안타까웠다. 정성 들여 한 장 한 장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고 돌아가는 길에 그 뜻을 헤아려보기로 했다.
일승대를 장식한 서각들
일승대 옆으로 보이는 전각은 동원 스님이 제자들과 함께 단청과 불화를 연구하고 작업하는 화방(畵房)이다.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스님이 계시지 않아 다음 기회를 엿볼 수밖에 없었다. 해가 제법 기울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명암 뒤편으로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아름다운 풍경이 내내 떠나질 않았다.
>>>⑦옥련암, 깨달음의 다양한 세계를 엿보다
※이 글은 양산문화원 위탁을 받아 진행한 ‘통도사 암자 순례’ 책자 발간 사업에 제가 취재ㆍ수록한 내용을 양산문화원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모든 저작권은 양산문화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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