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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바로 통도사(通度寺)다.

신라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영축산에 통도사를 창건한 이래 통도사는 양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 단지 종교적인 차원이 아니라 통도사는 양산 정신문화의 뿌리와 같은 곳이기도 하다.

 

통도사를 한국불교의 으뜸인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 부르는 까닭은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시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통도사는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보고(寶庫)다. 3만 여점이 넘는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통도사 성보박물관을 비롯해 사찰 곳곳에 남아 있는 문화재는 우리나라 불교 문화를 대표할만하다.

 

비단 통도사 본사뿐만 아니라 영축산 자락에 터를 잡고 있는 산내 암자들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보배와 같. “통도사만 보고 통도사 암자들을 제대로 둘러보지 않는다면 통도사를 10%도 보지 못한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산내 암자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특색과 소중한 사연을 갖고 있.

 

특히 최근 걷기 문화가 확산되면서 통도사 암자 순례를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통도사 암자 순례가 단순한 걷기 차원을 넘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성찰이 이뤄지는 여행이 되길 바라며 통도사 암자 숨은 이야기를 전해본다. 

 

그 첫번째는 통도사 암자 순례길의 시작, 무풍한송로 이야기다.

무풍한송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하다.

 

종교를 떠나 산문(山門) 앞에 서면 늘 마음이 겸허해진다. 특히 산문을 막 지나 뒤를 돌아보면 그동안 일상에 쫓기며 살아온 시간이 벌써 저만치 멀리 사라져버린 기분마저 든다.

 

통도사(通度寺). 우리나라 3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불보사찰(佛寶寺刹)이다. 그리고 통도사를 품은 영축산(靈鷲山)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산문 밖에서 바라보는 영축산은 늘 온화하다. 산봉우리가 인도 마가다국 영축산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 영축산으로 불리는 이곳은 불교의 성지다.

 

평범한 사람 눈에도 영축산은 신비로운 산세를 가지고 있다. 어머니처럼 넓은 산자락에 통도사와 암자들을 품고 있으면서도 우뚝 솟은 산맥은 사시사철 세상 풍파를 막아줄 것 같은 아버지 뒷모습과도 닮았다. 그리고 그 아래 영축산문(靈鷲山門)을 지나면 숨은 보석 같은 암자들을 만날 수 있다.

 

통도사 산문 전경. 2017년 봄

 

통도사 산내 암자는 모두 17곳이다. 그 가운데 영축산문을 지나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에서 시작하는 암자 15곳을 두 차례 나눠 찾기로 했다.

 

첫 번째 순례는 무풍한송로에서 보타암-취운암-수도암-서운암-사명암-옥련암-백련암이고, 두 번째 순례 역시 무풍한송로에서 시작해 안양암-서축암-금수암-자장암-반야암-극락암-비로암-백운암으로 이어진다.

 

통도사 암자 순례 첫 관문인 무풍한송로는 통도 8경 가운데 무풍한송(舞風寒松)을 일컫는 솔밭길이다. 산문 앞 무풍교(舞風橋)에서 시작해 일반인들이 통도()계곡이라는 부르는 청류동(靑流洞)을 따라 길게 뻗은 소나무 숲길을 말한다. 한자를 직역하면 ‘춤추는 바람결에 물결치는 찬 소나무’라는 뜻인데 ‘소나무를 춤추게 하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길’이라는 시적 표현이 더 운치 있게 와 닿는다.

 

무풍한송로 괘불탱화. 2017년 가을

 

사시사철 아름답지 않을 때가 없지만 특히 여름에는 오랜 세월 풍파를 견디며 통도사를 지켜온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낳고 그 사이로 바람을 숨결처럼 불어넣는다. 눈을 감고 소나무가 뿜어내는 솔향을 맡고 있노라면 마치 해탈향(解脫香)처럼 느껴진다.

 

무풍한송로 시작은 산문 앞 무풍교다. 산문 안으로 들어서면 자동차전용도로와 솔밭길이 나뉘는 갈림길이 보인다. 솔밭길 옆 자동차전용도로가 시작하는 무풍교는 1990년대 태응 스님이 통도사 주지를 지낼 때 산내 도로 정비를 하면서 생긴 길이다.

 

자세히 보면 산문 바로 앞 낡은 다리 난간에 무풍교(舞風橋)라는 글씨가 보인다. 확장으로 광장처럼 보이지만 사실 산문 바로 앞 공간이 옛 무풍교를 확장한 곳이다. 현재 무풍교는 모두 2곳인 셈이다. 산문 앞 광장처럼 보이는 곳이 제1 무풍교며, 자동차도로가 시작하는 곳이 제2 무풍교다.

 

1 무풍교 첫 확장은 구하(九河) 스님 때 이뤄졌는데 제2 무풍교에서 바라보는 청류동 아래 너른 바위 가운데 스님이 새긴 한시(漢詩)가 세월의 흔적처럼 흐릿하게 남아 있다.

 

流水千年通度寺(유수천년통도사) 통도사 천년 역사는 흐르는 물과 함께하고

落花三月舞風橋(낙화삼월무풍교) 무풍교에 삼월이 오면 낙화가 아름답다

 

이 바위는 조선 인조 19년 우운대사(友雲大師)가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대웅전을 중건하고자 시주를 받으려 절을 나섰다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설화가 남아 있어 ‘관음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하 스님은 낡은 다리를 고치면서 우운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던 곳에 소회를 남겼을지 모른다. 그리고 무풍한송로가 시작하는 지점 바위 가운데 당시 교량 축적을 도운 이들의 이름을 함께 적어놓은 일종의 기념석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차단봉을 놓아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곳에서부터 굵은 모래가 깔린 무풍한송로가 시작한다.

 

통도사로 향하는 무풍한송로를 걷는 일은 속세를 벗어나 정토(淨土)로 향하는 관문이다. 산문에서 멀어질수록 우리가 집착했던 것과 거리를 두며 새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나를 발견하는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

 

청류동. 2017년 여름

 

햇살이 나무 사이로 쏟아지고 솔향이 머리를 맑게 한다. 길을 따라 함께 찾는 이를 반기는 청류동 맑은 물은 고요한 솔숲 길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드문드문 보이는 석등을 보며 전기가 없던 시절, 석등 불빛을 따라 걸었을 사람들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청류동으로 내려가 발을 담그며 여름 한 철 더위를 식혔을 사람들도 머릿속에 그렸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이곳에서 ‘용피바위’라고 쓰여 있는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무풍한송’이란 이름이 언제부터 붙었는지 알 수 없지만 용피바위를 보며 무풍한송로가 오랜 세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을 거란 짐작을 해본다.

 

무풍한송로 용피바위. 2017년 가을

 

용피바위’는 통도사 창건 설화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慈藏律師)는 인도 영축산과 닮은 이곳 산에 절을 세우려 했는데, 산 아래 큰 연못에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다. 절을 지으려면 연못을 메워야 해 자장율사는 용들을 불러내 설득에 나섰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장율사는 하는 수 없이 법력으로 연못을 펄펄 끓게 해 용들을 쫓아냈다.

 

아홉 마리 가운데 다섯 마리는 남서쪽을 향해 도망을 가다 어느 계곡에 떨어져 죽었다. 현재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있는 ‘오룡골’이라는 지명이 붙은 유래다. 또 세 마리는 동쪽으로 달아나다 솔밭 길 인근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때 용이 흘린 피가 바위에 낭자하게 흘렀는데 이후 사람들이 이곳을 ‘용피바위’ 또는 ‘용혈암(龍血岩)’이라고 부르고 있다. 용의 피가 흘러내려 붉은빛을 띤 바위였던 탓이다.

 

마지막 남은 한 마리는 자장율사에게 순종하며 절을 지키겠다고 맹세하자 자장율사가 작은 연못을 만들어 그곳에 살게 했다. 그 연못이 바로 통도사 대웅전 옆에 있는 구룡지(九龍池). 오랜 세월 동안 그 모습은 사뭇 달랐겠지만 통도사 창건설화에 등장할 만큼 무풍한송로가 역사를 가진 곳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길을 걷다 ‘청류동’이라는 현판을 단 쉼터가 보였다. 차와 다과를 파는 곳인데 무풍한송로 중간 지점이어서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 가기 좋아 보였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쉼터 반대편을 보면 북쪽 언덕으로 오르는 비밀스럽게 보이는 작은 길이 하나 있다.

 

통도사 다비장. 2017년 가을

 

길을 따라가면 통도사 다비장(茶毘場)에 이른다. 예전에는 목조건물이었지만 화재 위험 탓에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다. 통도사에서 깨달음을 얻은 수많은 고승이 거쳐 갔을 곳이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온화하게 다비장을 지키고 있다. 생명 가득한 무풍한송로와 삶을 마감하는 다비장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다비장을 잠시 들르고서 다시 걸음을 이어갔다. 평온하게 흘러가는 청류동을 바라보며 문득 한 번 흘러간 물은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미 지난 것들을 왜 그렇게 집착하며 살아왔던가. 다시 다비장 풍경이 떠올랐다.

 

통도사에서는 무풍한송로를 보다 많은 이들이 찾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정비해왔다. 오래된 활엽수를 정비해 솔밭 길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고운 굵은 모래를 깔아 어린아이부터 나이 든 어르신 모두 편안히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무풍한송로를 찾은 이들이 한 번쯤 생각 해야 할 구절을 비석에 새겨 놓았다. 천천히 걸어도 30분가량이면 끝날 거리지만 무풍한송로 곳곳에 눈여겨봐야 할 볼거리가 가득하다.

 

무풍한송로 '부처님 오신 날' 연등. 2017년 봄

 

또한, 부처님 오신 날 연등행렬이 이어져 야간에도 무풍한송로를 개방하고, 개산대재 때는 괘불(掛佛, 법당 밖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거행할 때 걸어 놓는 탱화) 전시를 기획하는 등 다양한 행사도 무풍한송로에서 만날 수 있다. 이곳 주민들 역시 해마다 통도사 순례 가족사랑 걷기대회를 열어 무풍한송로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고 있다. 문화관광부와 경남도가 ‘걷기 좋은 길’로 선정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덧 솥발길이 끝나는 지점에 와 있다. 통도사지(通度寺誌)에 따르면 무풍한송로는 무풍교에서 시작해 소코샘까지 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소코샘’은 지금 성보박물관 인근에 있던 샘인데, 물이 아래에서 솟구쳐 오르는 모양새가 마치 소가 숨을 내뱉는 것과 흡사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솔밭길이 끝나는 곳에 커다랗게 영축총림(靈鷲叢林)이라 쓴 비석이 보인다. 이제 통도사 본사로 들어가는 초입이다. 이어 하마비(下馬碑)가 보인다. 아무리 지체 높은 사람이라도 부처님 나라에 들어서려면 예의를 갖추라는 표시다.

 

하마비가 서 있는 언덕에 커다란 바위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마치 부채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선()바위라고 부른다. 통도사 산문에서부터 청류동, 무풍한송로 바위 곳곳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영험한 사찰에 들렀던 만큼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픈 욕망을 쉽게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일종의 방명록과도 같은 흔적은 선바위에도 빼곡하게 남아 있다.

 

선바위. 2017년 가을

 

그런데 유심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잘 아는 인물들의 이름도 보인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와 그의 스승 복헌(復軒) 김응환(金應煥)의 이름이 선바위에 나란히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 최고 화가 가운데 하나인 김홍도가 이곳 통도사를 찾아 어떤 영감을 얻었을지 궁금해졌다. 현재 성보박물관에는 김홍도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하는 ‘통도사전도’가 남아 있다. 조선 후기 통도사 전경을 실제 그린 이 그림에는 아름다운 소나무 숲 속에 안긴 통도사 옛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낙관이 없고, 그림에 관한 기록도 없어 단원의 그림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선바위를 지나면 청류동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오는데 바로 선자교(扇子橋). 그리고 선자교 맞은편 수많은 부도가 줄지어 서 있는 언덕이 바로 통도사 부도원(浮屠園)이다. 부도원은 1980년대 산내에 흩어져 있던 역대 고승들의 부도들을 이곳으로 옮겨 모셨다. 대웅전을 창건한 우운대사를 비롯해 역대 선사들의 부도와 함께 근ㆍ현대 통도사 고승인 구하(九河)ㆍ경봉(鏡峰)ㆍ월하(月下)ㆍ벽안(碧眼) 스님 부도도 만날 수 있다.

 

부도원을 지나 총림문(叢林門) 안으로 들어서면 첫 번째로 보이는 현대식 건물이 바로 한국 불교 예술의 보고(寶庫)인 성보박물관이다. 성보박물관에는 3만여 점에 가까운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데 시기마다 다양한 학술대회와 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사실 성보박물관 한 곳을 둘러보는 것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청류동을 가로지르는 삼성반월교. 2017년 여름

 

성보박물관과 일주문(一柱門) 사이에는 청류동을 가로지르며 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하는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가 기다리고 있다. 통도사를 찾는 이들이면 누구라도 건넜을 삼성반월교는 경봉 스님이 세웠다고 한다. 오른편 석주에는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라고 적혀 있고, 왼편에는 ‘영조운산리(影照雲山裏)’라는 글귀가 보인다. 운산(雲山)은 삼성반월교를 마주하는 영축산을 의미하는데 풀이하면 ‘영축산의 참된 모습이 계곡에 비친다’는 뜻이다. 곧 ‘부처님 진리가 비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무지개를 닮은 작은 아치 3개가 모여 큰 반월을 만드는 형상을 가진 삼성반월교는 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일주문 바로 앞 세속(世俗)과 출세(出世)를 잇는 다리, 둘 사이 경계가 되기도 하고 인연이 되기도 하는 아름다운 다리는 사시사철 통도사에서 가장 유명한 풍광 가운데 하나로 사랑받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암자 순례 다음 목적지인 보타암으로 향한다.

 

>>>보타암, 향기로운 세상을 열다(계속)

 

이 글은 양산문화원 위탁을 받아 진행한 통도사 암자 순례책자 발간 사업에 제가 취재수록한 내용을 양산문화원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모든 저작권은 양산문화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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