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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통도사 암자순례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통도사 암자 가운데 유일하게 차로 갈 수 없는 곳이

바로 백운암입니다

 

이름처럼 하얀 구름 속에 있는 백운암은

속세가 거리를 둔 탓에

오랜 세월 수도처로 이름을 얻은 암자입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보면

숨이 턱 막히기도 하지만

백운암에 올라 바라보는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백운암과 천성산, 2017년 가을

 

백운암, 구름 아래 펼쳐진 세상을 보다

 

통도사 암자 순례 마지막 암자인 백운암(白雲庵)으로 향한다. 비로암에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백운암 주차장이 보인다. 백운암은 이름처럼 통도사 산내 암자 가운데 영축산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차로 갈 수 있는 데가 바로 여기 주차장까지다. 주차장에서부턴 두 다리를 의지해 한 걸음 한 걸음 계곡 옆으로 난 비좁고 경사가 급한 등산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영축산 8부 능선에 있는 백운암은 예로부터 수도처로 유명하다. 워낙 깊은 산중에 있다 보니 찾는 이도 드물다. 892(신라 진성여왕 6) 조일대사(朝日大師)가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자세한 내력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1810(순조 10) 침허대사(沈虛大師)가 중창하고, 1970년대 경봉 스님이 암자를 후원해 규모를 늘렸고, 감원인 태봉 스님이 2013년부터 산신각을 중수하면서 지금 모습을 갖췄다. 주차장에서 백운암을 잇는 모노레일을 최근 시주를 받아 마련해 예전보다 암자에 필요한 물건을 나르는 일이 수월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백운암은 쉽게 찾을 수 없는 외딴곳에 있는 도량이다.

 

영축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백운암은 등산객들이 정상을 앞두고 쉬었다 가는 곳이다. 공양 때면 암자 마당 가득 등산객들이 모여 밥을 먹는 모습을 연출한다. 물론 돈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각자 성의껏 시주를 한다. 그리고 모노레일을 설치하기 전에는 주차장 부근에 짐을 쌓아 놓으면 등산객들이 각자 힘이 되는 만큼 짐을 짊어지고 암자까지 전달했다고 한다. 외딴곳에 있는 백운암에서만 볼 수 있는 훈훈한 장면인 셈이다.

 

주차장에서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에 나무를 깔고 흙으로 쌓아 만든 계단이 보인다. 이 계단부터 본격적으로 백운암을 찾아 떠나는 출발선이다. 계단을 벗어나면 이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보인다. 커다란 바위가 겹겹이 쌓여 있고 그 사이를 위에서 아래로 자연의 이치에 따라 물이 흐른다. 계단을 막 벗어났는데도 벌써 숨이 가빠온다. 잠시 뒤 계곡 한가운데 평평한 곳에 나무 의자가 있다. 비로암에서부터 걸어온 탓일까. 잠시 다리를 쉬기로 했다. 얼마 올라오지 못했는데 벌써 앞에 보이는 경사가 급한 길이 두려워진다. 의자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눈 부시다. 눈을 감고 조용히 물소리를 듣는다.

 

백운암 가는 길, 2017년 겨울

 

산사의 해는 짧다. 해지기 전에 백운암에 올랐다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에 짧은 휴식을 끝냈다. 다시 힘을 내려는 순간 눈앞에 다람쥐 한 마리가 인사를 한다.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 올망졸망한 눈빛으로 바위 위에서 나를 바라본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인적 없는 이곳에서 만난 뜻밖의 친구 탓에 기분이 밝아졌다.

 

하지만, 백운암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다. 주차장에서 불과 800m가량 되는 거리지만 경사가 매우 심한데다 길도 거칠다. 다행히 나무로 만든 계단이 군데군데 있지만 숨이 헐떡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중간 중간 쉬었다 가기를 한참 반복하다 그제야 바위 위에 자리 잡은 백운암이 눈에 들어온다. 포기하지 않고 오르다 보면 결국 목적지에 이르는 것이 인생이다.

 

백운암 계곡, 2017년 가을

 

드디어 영축산 백운암이라고 쓴 문이 보인다. 저녁 공양이라도 준비하는 듯 그 뒤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문을 지나 먼저 보이는 약수부터 한 사발 들이켰다. 친절하게 힘들게 올라오셨습니다. 영축산 백운암 청정약수를 드세요라고 쓰여 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인 듯 백운암을 찾는 이 모두 약수가 반가웠을 것이다.

 

문 앞에서 봤던 하얀 연기는 아궁이에 솥을 올리고 물을 데우는 것이었다. 보살과 처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불을 쬐고 있다. 정겨운 모습이다.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보며 아픈 다리를 잠시 주무르며 휴식을 취했다. 쿵쾅대던 심장을 어느 정도 진정시키고서야 본당으로 향할 수 있었다.

 

백운암 점심공양시간, 2017년 겨울

 

본당에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그런데 후불탱화에는 아미타불이 그려져 있다. 석가모니불 오른편 영가단에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따로 모셔두고 있다. 지장보살은 중생이 죽은 후 명부(冥府) 세계에서 죄와 고통을 구해주는 보살이다. 본당은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에 나란히 신중단과 영가단을 둔 형태다.

 

백운암에는 본당 외에도 산신각과 나한전, 용왕각(龍王閣)이 있다. 워낙 높은 곳 바위 위에 터를 잡아 전각 사이 간격도 좁고 위아래로 엇갈려 배치한 모습이다. 본당을 지나면 용왕각이 바로 옆에 있다. 본당과 용왕각 사이로 올라가는 계단과 함께 나한전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로 산신각이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백운암 용왕각

 

보통 바닷가에 있는 절에서나 볼 수 있는 용왕각이 산중 암자인 백운암에 있는 것이 특이했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용왕각 앞 유리문에 세계 최고(最高) 용왕각이라 쓰여 있다. 용왕각 안에는 물로 채운 단 위에 용왕이 앉아 있다. 산중 암자인 백운암에 용왕각을 둔 까닭은 물이 귀해서다. 백운암은 예로부터 영축산 정상 아래에 있는 금샘과 은샘에서 흘러나온 물을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산신할배샘, 산신할매샘이라고도 부른다. 물이 부족할 때는 극락암에서 물을 길어 나르기도 했다고 한다. 물이 귀한 탓에 용왕을 금샘이 흘러 내려오는 길목에 모시고, 샘이 마르지 않도록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계단을 올라 나한전으로 향했다. 통도사 산내 암자에 나한을 모신 암자 가운데 나한을 별도 전각에 모신 암자는 백운암이 유일하다. 입구에 쓰인 한글 편액과 나한전 한글 편액 모두 태봉 스님의 글씨다. 백운암 나한전에는 오백 나한의 목각상이 있다. 중앙에 아난존자(阿難尊者)가 있고 주위로 다른 나한들이 에워싸고 있다. 아난존자는 부처의 사촌으로 부처가 열반하기까지 25년 동안 모셨다.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고도 하는데 가장 많이 들었다는 의미다. 부처의 곁에서 부처가 행한 설법을 가장 많이 듣고 기억한 제자로 어린 시절부터 한 번 들은 것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총명함을 지녔다고 한다. 부처가 열반한 후 제자들이 모여 부처의 말씀을 정리한 경()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제자들의 의견을 중재하는 역할을 했다. 팔만대장경이 세상에 탄생한 시초로 보는 첫 번째 경전 결집에 모인 제자의 수가 바로 500명이다.

 

백운암 오백 나한상

 

나한전에서 산신각으로 올라갔다. 영축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전각이다. 산신각에 모신 산신과 호랑이 조각은 600년 된 은행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산신각에 올라 바라보니 멀리 천성산이 한눈에 보인다. 이미 정상 너머로 기운 해는 천성산 근처에만 빛을 남겨놓고 힘들게 걸어 올라온 영축산 아래는 이미 어둑한 그늘이 드리운다. 이 모든 풍경이 발아래 있다.

 

통도 8경 가운데 백운명고(白雲鳴鼓)가 있다. 사찰에서 치는 북소리를 명고(鳴鼓)라 하는데 흰 구름이 영축산을 휘감을 때 백운암 북소리와 함께 바라보는 풍경을 뜻한다. 이제는 백운암에서 북을 치지 않지만 황홀한 풍광에 빠져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그 소리를 대신하는 듯하다. 서서히 노을지는 풍경 아래 흰 연기를 피워 올리는 백운암 전경이 아름답기만 하다.

 

속세와 거리를 둔 백운암은 예로부터 고승이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이름나 있다. 경허 스님은 백운암에 와 다음과 같은 예찬을 남기기도 했다.

 

백운암이 백운 속에 있어

白雲庵裏白雲在(백운암리백운재)

반은 층암에 반은 허공에 걸쳤다

半掛層巖半掛空(반괘층암반괘공)

숲의 연운 칡덩굴 속에 운치로운데

千樹煙蘿多韻致(천수연나다운치)

바람에 끌려서 백운 가운데 그네라도 타는 듯

隨風搖曳白雲中(수풍요예백운중)

 

-경허 스님 통도사 백운암

 

또한, 만공(滿空) 스님은 1901년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새벽에 원컨대 이 종소리가 법계에 두루 퍼져 철벽같은 어둠을 모두 밝게 하소서”(願此鐘聲遍法界, 원차종성편법계 鐵圍幽暗悉皆明, 철위유암실개명)라는 새벽 종송을 듣고 두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백운암 나한전

 

백운암이 수행처로 오랜 세월 사랑받아 왔다는 사실은 전설로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통도사 호혈석(虎血石) 이야기다. 지금도 통도사 응진전(應眞殿) 옆과 극락전(極樂殿) 옆 북쪽에 있는 두 개의 바위를 보면 붉은 핏빛을 띠고 있다. 호압석(虎壓石)이라고도 하는데 바로 이 바위들이 백운암과 인연을 갖고 있다.

 

옛날에 백운암에 젊고 잘 생긴 스님이 강백(講伯, 스님에게 불교 경전을 가르치는 스님)이 되려고 열심히 수행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물을 캐러 왔다가 길을 잃은 산 아래 마을 아가씨가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백운암으로 피신하게 됐다. 스님은 비에 젖은 아가씨에게 단칸방 아랫목을 내줬다. 아가씨는 밤새 경전을 읽는 스님에게 반해 집에 돌아와서도 잊지 못하다 결국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사연을 들은 아가씨 부모는 스님을 찾아가 딸이 죽을지도 모른다며 딸과 결혼해 달라고 애원했다. 스님은 이를 거절하고 강백의 자리에 올랐지만, 아가씨는 한을 품은 채 눈을 감았다.

 

스님이 강백이 돼 많은 사람이 모인 연회에서 첫 강의를 하는 날, 어디선가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으르렁댔다. 모인 이들이 호랑이와 누군가 인연이 있는 것 아니냐며 웅성거렸고, 결국 스님들이 가사를 벗어 마당에 두니 호랑이가 강백 스님의 가사를 물고 뜯는 것이 아닌가. 불안에 떠는 다른 이들을 위해 스님이 마당으로 나서자 호랑이는 스님을 낚아채고는 영축산 정상까지 한달음에 사라졌다. 다음 날 사람들은 호랑이에게 물려간 스님을 찾으려고 산 이곳저곳을 뒤졌다. 결국, 죽은 스님을 발견한 곳은 백운암 아래 바위였다. 이후로 통도사 스님들은 호랑이 기운을 없애려고 호랑이 핏빛을 띤 바위를 경내 두 곳에 뒀는데 그것이 바로 호혈석이다.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 같기도 하고, 백운암이 통도사에서 수행도량으로 가지는 위치를 말하는 전설 같기도 하다.

 

어느덧 해가 많이 기울었다. 어둑해진 산길을 다시 내려가려니 두려움이 앞섰지만 그동안 순례해온 암자들의 사연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백운암 문을 나서고 등산객을 위해 마련한 쉼터에 서서 다시 한 번 천성산과 영축산 그리고 하늘을 바라봤다. 아직 남은 빛이 세상을 고요하게 비추고 있다. 언젠가 다시 걸음 할 날이 올 것이라는 다짐을 스스로 하며 세상으로 발길을 옮긴다. 길이 끝난 곳에서 다시 길을 시작한다.

 

백운암의 저녁 풍경, 2017년 가을

 

이 글은 양산문화원 위탁을 받아 진행한 통도사 암자 순례책자 발간 사업에 제가 취재수록한 내용을 양산문화원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모든 저작권은 양산문화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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