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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방선거가 끝이 납니다

그동안 수많은 희망과 욕망이 뒤엉킨 시간을 보낸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통도사 암자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자장암을 소개합니다

 

금와보살로 유명한 자장암은 이름처럼 자장율사가 세운 암자입니다

통도사 첫 암자라는 상징성과 함께 자장암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선거가 지나면 취현루에서 차 한 잔 즐기며

맞은 편 영축산 연봉을 바라보는 사치를 누릴까 합니다

 

자장암, 2017년 겨울

 

자장암,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다

 

비밀스러운 숲길을 벗어나 탁 트인 넓은 길로 나왔다. 자장암(慈藏庵) 가는 길에는 가을이면 몸을 흔들며 햇살을 반기는 갈대밭이 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을지 모르지만 함께 모여 바람에 몸을 맡기는 갈대가 외롭지만은 않아 보인다.

 

주차장 입구에 이르자 아래에서부터 맑은 물소리가 들린다. 너른 바위를 어루만지듯 흘러가는 계곡물은 그늘에서 시원한 소리를 내고 있다. 통도 8경 가운데 하나인 자장동천(慈藏洞天)이다. 자장동천은 안양동대 서쪽, 즉 영축산 서쪽에서 청류동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이다. ‘동천’(洞天)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산과 내로 둘러싸인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좋은 곳이라는 뜻이 있다. 도가(道家)에서는 신선이 사는 별천지를 의미한다. 그 뜻처럼 자장동천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여름이면 녹음이 가득한 그늘에서 누구라도 쉬어가고픈 충동을 느끼고 하고, 가을이면 물 위로 떨어진 울긋불긋한 낙엽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유유히 떠다닌다. 아름다운 풍광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 탓에 수행도량이 있는 곳에서 해서는 안 될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자장동천, 2017년 가을

 

자장암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이곳 바위벽 아래 움집을 짓고 수도했다고 한다. 이후 회봉대사(檜峰大師)에 의해 중건되고, 1870(고종 7)에 중수하고 1963년 용복대사(龍福大師)가 다시 중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결국,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 수도처에 암자를 세운 셈이다. 이곳에서 수행 중인 스님들은 통도사의 시작이 자장암이고 영축산 아래 첫 절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자장동천 위쪽 폭포에는 자장폭포(慈藏瀑布)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바위가 있는데 그 위로 세이석(洗耳淅)이란 글귀를 새긴 바위도 있다. 귀를 씻는다는 의미인데 자장율사 친필로 전해 오고 있다. 세이석과 관련한 이야기는 선덕여왕이 자장율사에게 국사(國師)를 맡아 달라고 간청했지만 계를 지키며 하루를 살지언정 계를 파하고 백 년을 살 수 있더라도 그것을 원치 않는다며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한 후 새긴 것이라고 한다. 자장암과 자장율사의 인연을 강조하는 구전(口傳)이다.

 

계곡물에 잠시 발을 담갔다. 지친 다리를 어루만지듯 물결이 일렁인다. 발을 담근 김에 너른 바위에 몸도 함께 맡겼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쏟아진다. 눈이 부시기도 했지만 눈을 감으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눈을 감고 온몸으로 자연을 느껴보기로 했다. 시간이 물과 함께 흘러가는 소리만 들린다. 자장동천에서 무심코 흘려보낸 시간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자장암 백팔계단, 2017년 여름

 

잠시 몸과 마음을 자장동천에 맡기고 나서 다시 언덕으로 향했다. 자장암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먼저 반긴다. ‘백팔번뇌를 잊게 하는 아름다운 계단이라 쓴 표지석 뒤로 돌계단이 놓여 있다. 그 중간지점에는 정토(淨土)와 속세를 잇는 동그란 돌문이 서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계단 높이가 왠지 어색하다. 한 계단씩 오르려니 무언가 애매하고, 두 계단씩 뛰어오르려니 보폭이 짧았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어린아이와 어르신들을 배려하려고 일부러 계단 높이를 조정한 것이다.

 

돌문을 지나자 전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자장율사가 수행했다는 바위에 세운 자장암이다. 자장암은 관세음보살과 문수·지장보살을 모시는 관음전(觀音殿)이 본당이다. 관음전 왼쪽 마애불을 새긴 바위가 있고 그 건너편에 아미타불을 모시는 수세전(壽世殿)이 있다. 그리고 자장율사 진영을 모신 자장전(慈藏殿)과 나반존자·산신을 모시는 산령각(山靈閣)이 한 전각을 쓰고 있다.

 

자장암 관음전, 전각에 불쑥 솟은 돌은 거북머리에 해당한다.

 

본당인 관음전은 거북바위 위에 그대로 전각을 올려 자연미를 살린 건물이다. 관음전 입구에는 꼬리 부분, 관음전 뒤에는 머리 부분, 그리고 법당 안에는 거북 몸통 부분에 해당하는 바위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보통 바위를 없애고 난 후 평지에 전각을 세우는 것과 달리 관음전은 있는 그대로 바위에 함께 어울리도록 전각을 지은 셈이다. 관음전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순리에 따라 지은 전각이라는 사실은 지붕에서도 드러난다. 마애불상을 새긴 바위 방향 지붕은 맞배지붕 방식으로 올렸지만, 반대편 지붕은 팔작지붕 방식이다. 마애불상을 훼손하지 않고 전각을 지으려다 보니 양쪽 지붕 모양이 달라진 것이다.

 

자장암 관음전 좌우편 지붕을 유심히 살펴보면 서로 다른 형식으로 지었음을 알 수 있다.

 

관음전 옆 높이가 4m가량 되는 바위에 마애불(磨崖佛)이 새겨져 있다. 중앙에 아미타불이 좌정해 있고 그 좌우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있다. 1896년 조성한 자장암 마애아미타여래삼존불(磨崖阿彌陀三尊佛)은 통도사에서 유일한 마애불로 등록문화재 제617호로 지정돼 있다. 거대한 바위를 배경으로 마치 한 폭의 불화(佛畵)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오랜 세월에도 여전히 자애로운 부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보살상 우측에는 조성과 관련한 기록이 남아있어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1896년 병신(丙申), 고종 337월에 고산정일(古山定一)의 화주(化主)로 김익래(金翼來) 등 다수 시주자들이 동참해 마애불상을 조성했다고 쓰여 있다. 이 가운데 요시야마라는 일본인 이름도 함께 적혀 있어 국운이 기울어가던 당시 시대적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문화재청이 마애불상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한 이유는 조선시대 불교 조각 가운데 마지막 작품으로 불화의 초본을 바위에 옮긴 것 같은 예술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콧수염과 턱수염 등 다른 마애불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표현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군데군데 진언 중의 진언 자가 범어로 음각 돼 있는 점도 특이하다. 마침 마애불상 머리 위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한 조각 흘러간다. 인자한 미소를 짓는 마애불상과 하늘을 번갈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장암 마애불

 

관음전과 마애불상 사이로 좁은 통로가 있다. 바로 자장암 금와보살(金蛙菩薩)을 만나는 길이다. 관음전 뒤편 관세음보살이라 쓰여 있는 바위벽을 보면 사람 팔 높이 근처에 엄지손가락 크기의 작은 구멍을 볼 수 있다. 자장율사가 이곳에서 수도하고 있을 때 개구리 2마리가 곁에서 떠나지 않자, 신통력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개구리들을 들어가게 했는데, 그 뒤 1쌍의 금개구리, 또는 벌과 나비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이능화(李能和)가 쓴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도 금와보살과 관련한 기록이 있다.

 

축서산 통도사 자장암 곁의 커다란 암벽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는데 그 속에 작은 개구리가 있다.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어떤 때는 벌이 되기도 해 그 변화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 여름철에 바위가 과열되면 뜨겁기가 솥과 같으나 그 위를 자유로이 뛰어다닌다. 사승이 이를 일러 금개구리라 하더라. 그런데 이 금개구리는 도무지 산문 밖을 나가지 아니한다. 따라서 한때 어떤 관리가 그 말을 믿지 아니하고 그 개구리를 잡아 함 속에 넣어 단단히 닫고서 손으로 움켜쥐고 돌아가다가 도중에 열어보니 없어졌다. 세간에 전하기를 그 개구리는 자장율사의 신통으로 자라게 한 것이라 말한다.

 

금와바위로 가는 관음전 벽을 보면 자장율사와 금와보살 이야기를 묘사한 벽화도 볼 수 있다. 불심(佛心)이 깊은 사람들에게만 모습을 보인다는 금와보살 덕분에 자장암은 늘 불자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다른 이들과 섞여 행여 금와보살을 만날 수 있을까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허탕만 치고 말았다.

 

금와보살이 산다는 바위

 

금와보살을 만나는 행운은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수세전으로 향했다. 수세전은 기둥이 상해 복원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한 모습이다. 보통 암자에서 수세전은 칠성각(七星閣)이라 부르는 곳으로 칠성신을 모시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불상 뒤편 탱화에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그 옆에는 한 전각 지붕 아래 자장전과 산령각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자장전 안에는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수행자로서 엄격한 계()와 율()을 지키라는 듯 근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전각 뒤로 돌아가면 으레 볼 수 있는 벽화 대신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양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처음에는 미처 벽을 단장하지 못했거니 생각했는데 스님에게 사연을 듣고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자장암 수세전과 산령각(자장전)

 

자장전 벽에 새긴 조각과 그림은 감원인 현문 스님의 지인 가운데 서양화가 이목을(李木乙) 선생이 전각을 보수할 때 남긴 작품이다. 부처의 염화미소(拈華微笑)를 상징화한 추상화인데 공간을 가로지르는 단순한 선만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이목을 선생은 중학교 때 눈을 다쳐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남은 눈마저 어느 순간 원인 모를 증상으로 희미해져 갔다. 화가가 눈으로 제대로 사물을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만으로도 선생의 시련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목을 선생은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선생의 웃음 연작은 이렇게 탄생했다. 단순한 선과 점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재치 있게 그려가고 있다. 설명을 듣기 전까지 미처 알아보지 못한 어리석음에 말이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자장암을 찾는다면 자장전 벽에 그려진 부처의 염화미소를 보며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사를 잊고 함께 빙긋 웃어보길 권한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전각들을 둘러보고 문을 나서 요사채 방향으로 걸어갔다. 몸을 한껏 낮춘 담장 너머로 영축산이 펼쳐진다. 관음전 뒤로 커다란 바위가 든든하게 전각을 지키고 있다. 바위 위에는 작은 탑이 푸른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떨어져서 다시 바라보니 자장암에 있는 모든 전각들은 지붕 높이가 마애불상을 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부처의 위엄을 지키려는 숨은 뜻이 있을 게 분명하다.

 

자장암에서 본 영축산 연봉

 

종무소로 사용하는 전각 마당에 서서 한참 영축산을 바라봤다. 자장암은 금와보살로 유명하지만 사실 자장암에서 바라보는 영축산 자태가 더 반가웠다. 자장동천을 에워싼 송림(松林) 너머로 보이는 영축산은 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도무지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낮은 담장과 푸른 소나무 그리고 영축산이 빚어내는 풍경은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젖히는 상쾌함을 가져다준다.

 

영축산을 마주 보는 누각에 취현루(醉玄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취현루의 현()진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 진리에 취한다는 뜻인데 눈앞에 펼쳐진 영축산이 바로 진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취현루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가히 절경이다. 취현루에 올라 스님과 차담을 잠시 나눴다. 그윽한 차향이 방안 곳곳으로 퍼져가는 동안 오후 햇볕이 따스하게 공간을 파고든다. 예전에 프랑스 르몽드지 사장이 취현루에서 바라본 절경에 넋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전혀 과장처럼 들리지 않았다. 다음 순례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아쉬울 뿐이었다.

 

취현루에서 본 영축산

 

어디선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가 들린다. 영축산 능선을 따라 늘어선 연봉(連峰)은 흔들림 없이 굳건하다. 계곡 물소리를 듣고 자란 소나무들은 하늘 위로 손을 뻗어 무언가 간절한 염원을 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취현루에서 내려와서도 그 풍광에 취해 있었다. 마당을 지나 백팔계단을 내려가는 동안에도 내내 사시사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이 잊히지 않았다. 자장동천이 흘러가는 방향을 따라 언덕을 내려가며 하늘을 봤다. 무심하게 떠 있는 구름처럼 순리를 어기지 않고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삶을 꿈꿔본다.

 

>>>⑬반야암, 깨달음에 이르는 지혜를 얻다

 

이 글은 양산문화원 위탁을 받아 진행한 통도사 암자 순례책자 발간 사업에 제가 취재수록한 내용을 양산문화원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모든 저작권은 양산문화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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