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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암자순례 두 번째 길을 떠납니다
무풍한솔길에서 시작해 만나는 첫 암자는 '안양암'입니다
‘마음을 편안히 하고 몸을 쉬게 한다’는 안양이라는 뜻처럼
조용한 암자 분위기가 먼저 마중합니다
이곳에는 경남 유형문화재 제247호로 지정된 북극전이 있는데
오래된 모습이지만 부처님 세계를 표현한 벽화와 탱화가
눈길을 사로잡는 곳입니다
안양암, 2017년 여름
안양암, 마음의 눈으로 극락세계를 보다
다시 길 위에 섰다. 첫 번째 통도사 암자 순례에 나선 후 마음속에 그동안 둘러봤던 암자들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일상에 쫓겨 지내면서도 마음은 늘 쉼을 원했다. 긴 기다림 끝에 다시 산문 앞에 섰다. 허락한 시간 동안 다시 새로운 풍경과 사연을 접할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무풍한송로는 변함없이 푸르다. 바람 따라 춤추는 소나무 사이로 햇살이 아른거린다. 맑은 물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청류동 역시 예전과 다를 바 없이 묵묵히 가야 할 길을 가고 있다. 잰걸음으로 바쁘게 오가는 이들도 있고, 느릿느릿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이들도 보인다.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풍한송로를 즐기고 있다.
무풍한송로를 벗어나자 곧 부도원과 총림문이 보인다. 그리고 여전히 고운 자태를 뽐내는 삼성반월교가 눈에 들어왔다. 절집 분위기와 사뭇 달리 떠들썩하게 삼성반월교를 오가며 추억을 남기는 이들 역시 여전하다. 나도 잠시 그들과 어울려 삼성반월교 앞에서 추억을 남긴다.
두 번째 순례는 삼성반월교를 건너지 않고 그대로 청류동을 따라 통도사 본사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안양암(安養庵)에서 시작한다. 경내를 한번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두 번째 순례 마지막 암자인 백운암(白雲庵)까지 가려면 꽤 시간이 걸리는 터라 곧장 안양암으로 발길을 향했다. 백운암은 통도사 산내 암자 가운데 유일하게 차로 갈 수 없어 산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행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잘 알지 못해 약간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일상에 지쳐 체력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정법교에서 바라본 영축산과 청류동
청류동 맑은 물소리를 벗 삼아 길을 걷다 보면 정법교(正法橋)라는 다리가 나온다. 그 뒤로 넓게 펼쳐진 청류동과 영축산이 그림처럼 찾는 이를 맞이한다. 언덕으로 오르는 구불구불한 길이 정겹다. 안양암이 있는 곳은 안양동대(安養東臺)라고 부르는 통도 8경 가운데 하나다.
통도사 본사에서 서남쪽 야산에 자리 잡고 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풍수지리적으로 통도사가 자리 잡은 곳이 코끼리가 누워 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안양암 위치는 코끼리 왼쪽 눈에 해당하고 수도암은 오른쪽 눈 그리고 사자목에 있는 5층 석탑이 코에 해당한다. 통도사 본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암자인 데다 언덕 위에 있어 안양암에 오르면 통도사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안양동대는 영축산 동서에서 흐르는 계곡물이 하나로 합류하는 곳에 있다. 정법교 위쪽 넓게 펼쳐진 계곡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야를 확 트이게 한다. 안양동대에 오르면 동쪽으로 통도사 전경, 무풍한송로, 통도사 앞 시가지(옛 들판)를 전망할 수 있고, 서쪽으로는 자장암이 있는 자장동천을 전망할 수 있다고 한다. 즉 결국 안양동대는 통도사 전경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전망대인 셈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숲이 무성해져 옛 사람들이 봤을 풍광을 온전히 볼 수는 없다. 나무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풍경의 조각을 이리저리 끼워 맞춰 마음의 눈으로 다시 그려볼 수밖에….
안양암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통도사 경내
구불구불 안양암으로 오르는 언덕길을 걷다 뒤돌아보니 통도사 전경이 천천히 눈에 들어온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전각 지붕들이 마치 파도가 물결치듯 이어진다. 햇살을 한껏 받은 기와지붕이 겹겹이 넘실거리는 모습은 깊은 불심(佛心)의 바다 위를 떠다니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친김에 아예 뒷걸음질로 언덕을 올랐다. 길을 서두르다 들리지 못한 통도사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었던 탓이다.
잠시 후 언덕 위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안양암 모습이 보인다. 동그랗게 암자를 둘러싼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안양암으로 오르는 맷돌박석에 걸음을 내디뎠다. 담장 너머 감나무에 붉은 홍시가 수줍게 익어가고 있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보이는 전각에 안양암(安養庵)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안양암 입구, 2017년 가을
‘안양’(安養)이란 말은 ‘마음을 편안히 하고 몸을 쉬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안양은 안양정토(安養淨土)를 줄여서 부르는 말인데 불가에서는 아미타불이 상주하는 청정한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일컫는다. 일체의 고통이 없고 자유롭고 안락함이 가득해 모든 중생이 왕생하기를 소망하는 이상향인 극락정토와 같은 의미를 가진 셈이다.
안양암에 들어서자 자갈마당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전각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좁은 언덕 위에 암자가 자리한 탓인지 일반적인 가람 배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담장 바로 옆에는 정토문(淨土門)이 있는데 담장에 가로막혀 지금은 사용할 수 없다. 안양암 옛 모습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확장을 거듭하다 보니 길과 문이 서로 엇갈린 셈이다.
안양암, 2017년 여름
안양암은 1295년(충렬왕 21년)에 찬인대사(贊仁大師)가 창건하고 1865년(고종 2년)에 중건했으며 1889년(고종 26년)에 우담대사(雨潭大師)가 다시 중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정토문을 살펴보면 ‘영축산 기도도량 안양암’(靈鷲山 祈禱道場 安養庵)이라는 현판이 있다.
정토문은 곧 극락정토를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정토문에는 삼태극(三太極) 문양이 그려져 있다. 정토문 삼태극 문양과 안양암에서 반드시 들려야 하는 북극전(北極殿) 모두 도교(道敎)가 우리나라 불교에 미친 영향을 가늠할 수 있는 흔적들이다. 감원인 무애 스님이 1984년부터 북극전을 중수하고 대웅전, 요사채, 산신각 등을 마련하면서 오늘날 안양암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고려시대 암자인 안양암은 그 역사만큼 거쳐 간 고승들도 많다. 일본강점기 선교양종(禪敎兩宗, 조선 전기 선종과 교종의 여러 종파를 통합해 운영한 공식 불교 종파) 칠교정(七敎正) 가운데 하나인 해담(海曇) 스님이 있던 암자다. 해담 스님은 오늘날 통도사 교(敎)와 선(禪)을 있게 한 구하(九河) 스님과 경봉(鏡峰) 스님의 스승이다.
안양암, 2017년 가을
정토문 앞에 서서 옛 안양암 흔적을 더듬다 본당으로 향했다. 안양암이라고 쓴 편액과 주련에 나와 있는 글씨는 월하(月下) 스님 것으로 특유의 힘찬 기운이 가득하다. 처음 언덕길을 오를 때 봤던 ‘안양암’이란 편액이 걸린 건물은 본당이 아니라 고금당(古金堂)이다. 안양암은 본당과 북극전, 산령각(山靈閣) 외에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는 고금당과 청송당(靑松堂), 심우실(尋牛室)이 있다.
심우실에서 말하는 ‘심우’(尋牛)란 선종(禪宗)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가운데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진리를 찾는 집’이라는 뜻이 있다. 경봉 스님이 일제 경찰에게 쫓기던 만해 스님을 이곳에 머물게 했다고 한다. 만해 스님이 서울로 돌아간 뒤에도 자신의 거처를 심우장(尋牛莊)이라고 이름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본당 안으로 들어서자 불단에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이 있고, 지장보살은 영가단(靈駕壇,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한 단)에 따로 모셔져 있다. 아미타불 오른편을 보면 전각으로 도장을 찍어 만든 액자가 걸려 있다. 선서화 대가인 수안 스님 작품으로 모두 58개의 전각으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을 표현한 것이다.
흔히 반야심경(般若心經)이라고 하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은 넓고 큰 지혜로서 부처와 보살이 닦은 경지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 진리의 글이다. 단순화시킨 전각으로 진리의 말을 전하고픈 스님의 뜻이 느껴진다. 오른쪽 입구 신중탱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이 그려져 있는데 모두 36위가 있다. 그런데 신장들의 시선 처리가 색다르다. 모두 제각각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는 신중들은 불법 수호에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듯하다.
안양암 북극전, 경남 유형문화재 247호
본당을 나와 맞은편에 서 있는 북극전으로 향했다. 북극전은 사람의 장수(長壽)를 도와주는 북두칠성을 모신 법당으로 보상암(寶相庵)이라 부르기도 한다. 과거에는 북극전이 안양암 본당 역할을 했다. 다른 암자 경우 북극성을 뜻하는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모시는 법당을 보통 칠성각(七星閣)이라고 하는데 통도사 산내 암자 가운데 안양암과 비로암에서는 북극전으로 높여 부르고 있다.
안양암 북극전은 경남 유형문화재 제247호로 지정돼 있다. 1989년 기단 조성과 일부 교체 등을 거쳐 2007년 전면 해체 보수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만큼 낡은 모습이지만 내부는 옛것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여전하다. 앞서 말했듯이 북극전은 도교 사상인 칠성신앙이 불교와 결합해 토착신앙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북극전 칠성탱화
문을 열자 칠성탱화가 눈에 들어온다. 모두 9폭에 걸친 탱화는 중앙에 치성광여래 삼존과 자미대제(紫薇大帝), 칠성을 그린 탱화와 좌우에 각각 칠여래(七如來)와 칠원성군(七元星君)을 짝으로 4폭씩 8폭이 배치돼 있다. 칠성도 배치는 중앙에 본존 1폭을 두고 향 왼쪽에는 짝수인 2, 4, 6을 향 오른쪽에는 홀수인 1, 3, 5, 7의 칠성을 두고 있다. 특히 왼쪽 끝에 8~9 북두성을 그린 탱화를 놓아 좌우 균형을 맞도록 했다. 이 탱화는 19세기 사불산화파 화승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친 하은(霞隱) 스님 작품으로, 현재 원본은 성보박물관에 보관돼 있고 북극전에 있는 것은 영인본(影印本, 원본을 사진 촬영해 그것을 원판으로 복제한 그림)이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내부에는 북극전을 수호하는 신장처럼 용 두 마리가 몸통으로 지붕을 떠받든 모양이 눈에 띈다. 벽에는 다양한 수인(手印)을 한 부처와 꽃을, 화반에는 용의 얼굴과 꽃을 그렸다. 벽화는 최근 것이지만 나무에 그린 그림은 옛것이어서 신구 대비가 뚜렷하다. 사방 벽과 천장 동서남북으로 가득한 벽화 탓에 작은 법당 안이지만 우주를 품은 듯 장엄한 광경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을 수호하는 다양한 모습의 용들이 마냥 북극전을 예사로운 법당으로 여기고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북극전이 단지 장수와 출산을 기원하는 민속신앙의 기도 터가 아닌 부처의 세계, 즉 극락을 표현하는 또 다른 공간이라는 사실은 천장 벽화에 새긴 주악비천도(奏樂飛天圖)에 있다. 곡을 연주하며 천상을 떠다니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은 비록 세월의 흔적에 낡고 깨진 곳이 많지만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당장에라도 악기 소리에 맞춰 옷자락을 하늘거리며 춤출 듯하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볼 수 있는 극락세계를 시간을 멈춘 채 여유 있게 둘러봤다.
북극전을 나와 산령각으로 가는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안양암이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있는 산령각(山靈閣)에는 독성각(獨聖閣)이라는 편액이 함께 걸려 있다. 편액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산신과 함께 나반존자가 모셔져 있다. 계단 위로 노송(老松) 두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허리를 굽힌 채 안양암을 내려다보는 모습은 옛 고승이 후배들의 수행과정을 엄격한 눈으로 지켜보는 듯하고, 또한 안양암을 찾는 이를 반기는 모습인 것 같기도 하다.
안양동대에서 바라본 통도사 경내
언덕 위로 올라서자 멀리 통도사 전경이 들어온다. 원래 이곳이 안양동대로 불리는 언덕이었지만 통도사 선원과 가까워 담을 쌓은 탓에 예전처럼 한눈에 전경이 들어오지 않는다. 소음과 안전 문제로 부득이하게 담을 쌓은 데다 세월과 함께 자란 나무들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청송당 뒤편으로 난 산길을 따라 수도암 방향으로 가다 보면 또 다른 안양동대가 있다. 그곳 역시 나무들이 자라 통도사 전경을 다 들여다볼 수 없지만 수도암으로 향하는 길에 들려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원래 안양동대는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활을 쏘려다 눈앞에 펼쳐진 경관이 너무 빼어나 활을 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서 있는 곳이 같더라도 사람마다 보는 것이 다르다. 안양동대 역시 어떤 이는 통도사 전경을, 어떤 이는 멀리 내다보이는 시가지를, 어떤 이는 우뚝 솟은 영축산 자태에 감동한다. 어떤 마음으로 안양동대에 서 있는지가 더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왜구조차 놀라움으로 바라봤던 옛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여전히 영축산과 통도사 전경을 즐기기에 무리가 없다. 안양동대에 올라 바람을 느끼며 마음의 눈으로 그 옛 모습을 그려본다.
노송 아래 바위 위에 놓인 작은 불상들이 영축산을 배경으로 찾는 이들은 반긴다. 조심스럽게 쌓아올린 돌탑에 작은 돌 하나를 얹어 놓고 살면서 순간순간 욕심으로 어두워진 마음의 눈이 밝아지길 기원했다.
안양동대
>>>⑩서축암, 깨달음의 말씀으로 세상을 비추다
※이 글은 양산문화원 위탁을 받아 진행한 ‘통도사 암자 순례’ 책자 발간 사업에 제가 취재ㆍ수록한 내용을 양산문화원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모든 저작권은 양산문화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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