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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산내암자 가운데 가장 비밀스러운 곳이 바로 '금수암'입니다

감원 스님 홀로 수행을 이어가는 금수암은

일반인의 발길을 허락치 않겠다는 듯 깊은 곳에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암자 곳곳에 스님의 손길이 깃든

부처님의 마음이 함께하는 암자입니다

 

금수암, 2017년 여름

 

금수암, 일상에서 수행의 의지를 엿보다

 

서축암 세심교를 다시 건너 큰길을 따라 걸었다. 곧 금수암(金水庵)으로 향하는 길을 알리는 자그마한 비석이 보인다. 자장암 표지석과 나란히 있지만 무심결에 놓쳐버릴 수도 있는 작은 크기다. 찾는 이들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듯 보이는 표지석을 뒤로하고 깊은 숲길로 접어든다.

 

금수암은 사실 일반인들이 쉽게 찾는 암자는 아니다. 감원인 여산 스님 홀로 수행을 이어가는 암자기 때문이다. 큰길에서 벗어나 비밀스러워 보이는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한적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늘 위로 줄기를 뻗어 올린 나무들이 길 위로 다시 가지를 뻗고 나뭇잎을 뿌리면서 발걸음마다 사각사각 밟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간간이 들리는 새 소리도 반갑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분위기에 취해 걸음을 옮기다 보면 이내 일반인 출입을 경계하는 안내문과 함께 차량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도록 쇠줄로 막아놓은 출입구가 있다. 수행도량으로 일반인 출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만, 부처를 만나고 싶은 이들만 들어오라는 안내도 함께 남겨놓았다. 멀리 담장 위로 암자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금수암 가는 길, 2017년 가을

 

용기를 내 조심스럽게 출입구 너머 축봉교(鷲峯橋)를 지나 크게 휘어진 길을 따라 암자로 향했다. 크게 휘어진 길을 돌아서니 그제야 암자 입구가 보인다. 문 앞에는 백구(白狗) 한 마리가 찾는 이를 먼저 맞이한다. 다행히 짖지는 않고 꼬리를 살랑 흔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참을 응시한다. 출입을 자제하라는 경고를 읽고 암자를 찾은 터라 우선 암자를 지키는 백구에게 인사를 하고 문 안으로 들어섰다.

 

암자 마당에는 잔디가 깔렸고 단출하지만 기품 있는 법당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금수암 본당이다. 그리고 본당 맞은편에는 영지를 사이에 두고 팔각정 하나 서 있다. 본당 뒤편으로 요사채가 얼핏 보인다. 수수하기 이를 데 없다. 금수암의 첫인상은 마치 시간을 멈춰놓은 듯하다.

 

금수암, 2017년 가을

 

금수암은 1986년 감원인 여산 스님이 창건한 암자다. 원래 논이었던 부지 위에 불사를 일으켜 지금까지 스님 홀로 수행에 전념하고 있다. 금수암은 영축산 정상아래 금샘에서 흘러내린 물이 이르는 암자다. 암자 이름을 붙인 연유를 묻는 말에 스님은 물이 좋아서.”라며 무심하게 답했다. 평소에는 문을 닫아 놓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금수암을 찾은 날, 스님에게 방문 목적을 말하고 잠시 차담(茶啖)을 나눌 수 있었다.

 

요사채가 있지만 스님은 팔각정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사방을 유리로 막아 정자라기보다 작은 사랑방처럼 여겨졌다.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이 흘러가는 풍경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스님과 차담을 나누기 전, 먼저 본당부터 들려 비로자나불에게 인사를 드렸다. 불단 한가운데 위엄 있게 앉은 비로자나불 옆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서 있다. 보통 비로자나불 협시보살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시는 것과는 달랐다. 그리고 좌우 벽면을 보니 석상들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본당 내부뿐만 아니라 암자 곳곳에 예사롭지 않은 석상들이 가득하다. 모두 스님이 직접 모은 것들이다.

 

금수암 나한상

 

처음에는 어두워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본당 안 석상들은 부처의 제자인 18나한이다.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의 준말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말한다. 나한전을 따로 모시는 암자들도 있지만 금수암에서는 비로자나불과 나한들을 본당에 함께 두고 있다. 선반 아래 나한 이름을 붙여 놓았는데 저마다 다른 모습인 나한들을 둘러보다 고개를 들어보니 천장 아래 벽엔 불교 조사(祖師)들을 묘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어둠 속에서 석상과 불화를 바라보고 있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지켜보던 스님이 불단 앞문을 열어줘 밝은 곳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본당을 나와 정면에 있는 팔각정을 봤다. 영지는 커다란 바위로 둘러싸여 있고 나뭇잎이 떨어져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눈여겨보니 금수암은 건물 배치 자체가 하나의 법당처럼 구성돼 있다. 본당이 불단이라면 팔각정은 사람들이 예불을 드리는 위치다. 비록 건물에 가려 있지만 비로자나불이 있는 위치에서 팔각정까지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팔각정에서 본 금수암

 

본당 좌우편에는 작은 석상 2개가 놓여 있는데 팔각정에서 본당 정면을 바라보고 오른편엔 문수보살이, 왼편에는 보현보살이 새겨져 있다. 불단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있었는데 정작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협시보살을 건물 밖에서 찾을 수 있었다. 두 조각상 모두 바위를 갈라 그 속을 파낸 형태로 조각이 돼 있는데 어지간한 정성이 아닌 듯했다.

 

보현보살(普賢菩薩)은 부처의 행원(行願)을 대변하는 보살이다. 이 보살은 문수보살(文殊菩薩)과 함께 비로자나불 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협시보살이다. 문수보살이 비로자나불 왼편에서 여러 부처의 지덕(智德)과 체덕(體德)을 맡고, 보현보살은 오른편에서 이덕(理德)과 정덕(定德)과 행덕(行德)을 맡는다. , 문수보살이 지혜를 상징한다면 보현보살은 행동과 실천을 의미한다.

 

금수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석상은 한쪽 다리를 내린 채 각각 사자와 코끼리 위에 앉아 있다. 석상이라 색을 표현하지 못했지만 푸른 사자와 흰 코끼리일 것이다. 보통 불교에서 문수보살은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푸른 사자를 탄 모습으로 묘사하고, 보현보살은 흰 코끼리를 타고 부처가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돕는 모습으로 표현하곤 한다.

 

금수암 팔각정

 

고개를 돌려 팔각정을 바라보니 영지 양편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석상이 서 있다.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보살이 팔각정으로 향하는 길에 보인다. 불단을 나와 팔각정으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자비로운 관세음보살 석상이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본당과 팔각정을 잇는 일직선을 중심으로 금수암에 있는 모든 사물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석상이 그랬고, 영지 좌우편에 있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그렇다. 그리고 마당에 서 있는 석탑과 사자상 모두 대칭을 이루며 본당에 모신 비로자나불을 호위하듯 금수암을 지키고 있다. 팔각정에 올라 스님과 차담을 나누는 동안에도 사방으로 투명하게 비치는 풍경에 마음을 뺏기고 있었다.

 

사방이 시원하게 보이는 팔각정 안에서 바람이 부는 모습, 햇살이 내려와 나뭇잎과 영지에 부서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차 향기와 함께 흘러가는 시간이 고스란히 손에 잡히는 듯했다. 머릿속으로 사계절의 변화를 그려봤다.

 

봄이면 여린 싹을 틔우는 나무들과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들꽃들. 여름이면 점점 푸르게 짙어갈 녹음과 그 사이로 더 밝게 세상을 비출 햇살, 하나 둘 허물을 벗듯 낙엽을 떨어뜨리는 가을과 숨 쉬는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삭막한 겨울 풍경까지. 사계절 풍경 모두가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중생이 죽은 뒤 그 업()에 따라 육도(六道)의 세상에서 생사를 거듭한다는 불교의 윤회사상(輪廻思想)이 함께 떠올랐다. 스님은 미욱한 중생이 어리석은 상념에 빠진 것을 간파라도 한 듯 묵묵히 식은 차를 다시 따뜻하게 채우곤 아무 말 없이 그냥 내버려뒀다.

 

금수암, 2017년 가을

 

찰나의 순간, 팔각정을 내려다보고 있을 비로자나불이 떠올랐다. 암자 전체가 마치 인법당과 같은 이곳에서 스님은 비로자나불이 늘 자신의 행동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을지 모른다. 불단 바로 아래에서 흐트러진 몸과 마음가짐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스님이 일상을 팔각정에서 보내는 이유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상 자체가 수행의 연장인 셈이다. 어느 곳에서 어떤 행동을 하든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스스로 나태해지기 쉽지 않기 마련이다. 20여 년 동안 홀로 수행을 하는 스님은 이조차도 이미 의식하지 않을 것이다.

 

차를 마시고 따뜻해진 몸과 마음을 선물로 받고 금수암을 나섰다. 푸른 녹음 속에 포근히 안긴 금수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문을 들어섰을 때와 사뭇 다른 기분이 들었다. 낯설었던 시간은 금방 사라지고 무심하지만 길손을 반겨줬던 스님 모습이 단아한 암자 풍경과 겹친다. 들어올 때 인사를 나눴던 백구와 작별하려고 손을 흔들자 배웅이라도 하듯 꼬리를 흔들며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시 비밀스러운 숲길로 걸음을 옮긴다.

 

금수암 백구

 

>>>⑫자장암,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다

 

이 글은 양산문화원 위탁을 받아 진행한 통도사 암자 순례책자 발간 사업에 제가 취재수록한 내용을 양산문화원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모든 저작권은 양산문화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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