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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라는 말은 지혜를 뜻합니다
작은 암자에 참 깨달음을 얻으려는 정성을 가득 담아
세운 반야암은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주는 암자입니다
반야암, 2017년 봄
반야암, 깨달음에 이르는 지혜를 얻다
자장암에서 내려와 비로암과 반야암으로 나뉘는 삼거리에 다시 섰다. 우선 반야암(般若庵)부터 들리기로 했다. 곡식이 익어가는 너른 벌판을 따라 길을 걷다 보니 반야암이 보인다.
반야암은 1999년 감원인 지안 스님이 창건한 암자다.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청류동을 흘러가는 계곡을 끼고 넓은 부지에 반야보전(般若寶殿), 청향당(淸香堂), 세진정(洗塵亭) 등 전각이 들어서 있다.
반야암이 이곳에 자리한 것은 특별한 사연이 있다. 지안 스님이 마산에 머물고 있을 때 가진 장서(藏書)가 너무 많아 보관할 공간이 별도로 필요할 지경이었다. 어렵게 마산 학림사 주지인 초현 스님에게 거처할 방을 부탁했는데 스님과 막역한 사이였던 우대덕화 보살이 이곳 땅을 기증했다. 평생 수행자로 살아온 지안 스님이 절 지을 방법을 모른다며 땅을 되돌려주려 하자 우대덕화 보살이 친구인 배보현행 보살에게 도움을 청한 끝에 이곳에 법당을 지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직계슬하가 없었던 배보현행 보살이 갑작스레 운명하면서 남은 재산을 조카에게 물려줬다고 한다. 다행히 보살이 재산을 물려주기 전 유언을 함께 남겨 조카로부터 법당을 지을 건축비를 보시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세운 암자가 바로 반야암이다. 지안 스님은 두 보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남기고자 암자에 작은 공덕비를 세웠다.
암자 이름인 반야(般若)는 ‘지혜’를 상징하는 말이다. 원래 암자를 창건할 때 암자 동편에 소나무가 많아서 송진암(松眞庵)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다 반야암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으뜸이 되는 지혜를 기르는 곳’이라는 의미다.
책이 너무 많아 놓을 공간 하나 마련하려고 시작한 일이 암자까지 짓게 됐다는 지안 스님의 사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스님은 조계종 종립승가대학원 원장을 지낸 대표적인 강백(姜栢)이다. 승가대학원은 불교경전을 연구하는 박사 과정으로 불교학 최고 과정을 통해 종단의 스승을 배출하는 곳이다. 지안 스님은 벽안 스님을 은사로 1970년 통도사에서 출가한 이후 통도사 강주 소임만 20년 넘게 수행할 정도로 불교계 대표적인 석학(碩學) 가운데 한 사람이다. 특히 금강경(金剛經)의 대가로 알려졌다. 2014년에는 몽골 전 대통령이 일주일간 반야암에 머물면서 스님에게 금강경을 배우고 갔을 정도다. 그런 스님이 암자 이름에 ‘지혜’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암자를 지으려고 논으로 묵혀뒀던 땅에 공사를 시작하니 절터로 추정되는 물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안 스님은 전생에 자신이 이곳 주지였을 것이라며 불사를 도운 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좋은 도량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다. 무엇보다 마산에서 ‘반야불교학당’을 열어 불자들이 공부하고 수행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이바지한 성과를 반야암에서도 이어갔다. 스님은 현대 불교가 여신도들에 의해 기복신앙 형태로 흘러가는 것을 늘 안타까워했다. 반야암을 창건한 후 ‘반야거사회’를 만들어 남신도들과 함께 ‘반야경전교실’을 열었다. 매주 화요일 진행하는 경전교실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반야암 세진정
반야암 주차장을 지나면 계곡 쪽에 세진정(洗塵亭)이라는 정자가 먼저 보인다. ‘속세의 티끌을 털어낸다’는 뜻을 지닌 정자에 올라서면 반야암과 영축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자 옆으로 흐르는 맑은 물에 속세의 티끌을 흘려보낸다. 그런데 정자 한편에 불교 관련 서적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배움을 통해 수행을 쌓아야 한다는 스님의 생각이 정자에도 깃들어 있는 셈이다. 또한, 이곳에선 불교학생회 학생과 젊은 스님들이 모여 차담을 나누며 진리와 세상살이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계곡 반대편에는 돌탑들이 보인다. 철로 된 다리를 통해 계곡을 건너 만날 수 있는 돌탑은 가슴 아픈 사연을 갖고 있다. 2010년 무렵 한 처사(處士)가 반야암에 요양을 위해 찾았다. 공무원이었던 그는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다 반야암과 인연을 맺어 이곳에 오게 됐다. 어느 날부터인가 처사는 지게를 지고 돌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계곡 아래에서부터 매일 같이 돌을 날라 탑을 쌓아 갔다. 그렇게 돌탑이 하나 둘 늘었다. 돌탑에 꽂힌 솟대도 처사가 남긴 것이다. 나무를 직접 깎아 만든 솟대는 돌탑 위에 염원을 담은 듯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기를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안타깝게도 처사는 병마를 이기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다. 반야암을 찾는 이면 신기하게 바라보기 마련인 돌탑에 담긴 사연이다.
반야암 석탑
통도사의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것은 본사 영각(影閣) 앞 홍매화 즉 자장매(慈藏梅)다. 그리고 서운암의 금낭화, 극락암의 벚꽃과 산수유가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다. 반야암의 봄을 알리는 꽃은 바로 목련과 겹벚꽃이다. 영축산을 배경으로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는 목련은 ‘고귀함’이라는 꽃말처럼 숭고한 정신을 나타낸다. 본당인 반야보전(般若寶殿) 아래 정원에는 겹벚꽃이 만발한다. 겹벚꽃의 꽃말은 ‘정숙, 단아함’이다. 지혜를 추구하는 반야암 정신과 잘 어울리는 꽃들이다. 버려진 땅이었던 반야암을 지금 가득 채운 나무들은 모두 지안 스님이 직접 심은 것들이다. 요즘에도 스님은 언양에 묘목장을 찾아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무를 심고 가꾸듯 반야암은 사람들에게 부처의 진리를 알리고 깨우치도록 돕고 있다. ‘반야경전교실’을 통해 경전을 탐구하는 일 외에도 반야암에서는 매달 첫째 주 일요일 ‘일요가족법회’를 열고 있다. 보통 불교에서는 음력을 기준으로 법회를 여는 경우가 많은데 일반 불자들이 평일과 겹칠 때가 잦아 참석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이 잦다. 지안 스님이 통도사에서 처음으로 일요법회를 열게 된 배경이다. 가족 단위로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젊은 층에도 불교를 접할 기회를 주고 있다. 지금도 삼대(三代)가 함께 반야암을 찾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불자들의 고령화를 고민하고 있는 불교계의 묵은 숙제도 해결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두는 셈이다.
반야암, 2017년 봄
이 밖에도 반야암에서는 후학(後學)을 길러 불교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로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와 연계해 해마다 봄·가을 두 차례 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아울러 학술대회에서 불교 연구와 관련한 번역, 저술 등 분야에 수상자를 선정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일도 마다치 않고 있다. 좋은 도량을 만들겠다는 초심(初心)을 이어가는 셈이다.
정원 한편 맑은 물이 고인 작은 연못에 얼굴을 비춰보곤 반야보전(般若寶殿)을 올려다봤다. 지혜의 공간으로 가는 길에 빛이라도 비추듯 돌계단 양옆으로 석등이 나란히 놓여 있다. 본당인 반야보전에는 아미타불과 관음보살·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 본당 안에 들어서니 넓은 공간 중앙에 불단이 있고 그 뒤로 후불탱화가 있다. 여느 암자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후불탱화 위 벽면에 오방불(五方佛)을 중심으로 좌우로 25명의 불제자가 법당 안을 감싸듯 그려져 있다.
반야보전 내부
반야보전에 그려진 부처와 불제자들은 타방불(他方佛)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하나의 부처가 아니라 여러 부처가 존재한다는 뜻으로 누구나 깨달음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어느 곳에서나 부처가 있고,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되는 길을 열 수 있다는 생각은 일체중생의 제도(濟度)를 목표로 삼는 대승불교(大乘佛敎) 사상을 잘 보여준다.
반야암에 모신 본존불(本尊佛)인 아미타불은 과거 법장(法藏)이라는 구도자(보살)였는데,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願)을 세우고 오랫동안 수행한 결과 그 원을 성취해 지금부터 10겁(劫) 전에 부처가 돼 현재 극락세계에 머무는 부처다. 우리가 잘 아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라는 염불은 ‘아미타불에게 귀의한다’는 뜻인데 중생에게 염불을 통해 부처가 되는 길을 알려주는 부처이기도 하다. 지혜를 구하고 그 지혜로 깨달음을 얻어 성불(成佛)에 이를 수 있다는 반야암 정신을 잘 보여준다.
법당을 나와 처마 끝을 바라보니 흰 코끼리상이 보인다. 반야보전 지붕 네 귀퉁이에 있는 흰 코끼리는 부처의 행원(行願)을 대변하는 보살인 보현보살(普賢菩薩)을 상징한다. 부처의 말(법)을 전하는 행동의 중요성을 전각에 남긴 것이다. 흰 코끼리와 스님이 직접 쓴 반야보전 편액을 번갈아 봤다.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지 않는 수도자의 참모습을 함께 떠올렸다.
반야암, 2017년 여름
반야보전 앞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영축산을 보다 다시 길을 나섰다. 청향당을 지나 내려가는 길에 ‘반야암’이라 쓴 표지석이 보인다. 돌에 새긴 것인 줄 알았는데 나무화석이라고 한다.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이라는 불경에는 ‘찰나’를 ‘두 사람의 남자가 마주 보며 5천 가닥의 명주실 양쪽 끝을 잡아당기고 다른 남자가 날카로운 칼로 단숨에 그 실을 자를 때 한 가닥의 명주실이 잘리는 동안 64찰나의 시간이 흐른다’고 말한다. 불교에서 매우 짧은 시간을 뜻하는 찰나의 반대개념은 겁(劫)이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는 사방과 상하로 1유순(由旬), 약 15km이나 되는 철성(鐵城)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00년마다 겨자씨 한 알씩을 꺼내 겨자씨 전부를 다 꺼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하고, 사방이 1유순이나 되는 큰 반석(盤石)을 100년마다 한 번씩 흰 천으로 닦아 돌이 닳아 없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고도 했다.
‘찰나’와 ‘겁’.
영겁(永劫)의 시간 속에서는 겁 또한 찰나가 된다. 암자 순례를 다니는 이 시간 역시 찰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화석에 새긴 ‘지혜’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흐르는 물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다음 암자인 극락암으로 걸음을 옮긴다.
반야암, 2017년 봄
>>>⑭극락암, 화엄 세계의 빗장을 열다
※이 글은 양산문화원 위탁을 받아 진행한 ‘통도사 암자 순례’ 책자 발간 사업에 제가 취재ㆍ수록한 내용을 양산문화원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모든 저작권은 양산문화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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