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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암은 유독 '물'과 많은 인연을 가진 암자입니다

통도사 방장을 역임한 원명 스님이

암자를 소개해달라는 우문에

퉁명스럽게 '물'이라고 답한 까닭을 함께 들어볼까요?

 

비로암, 2017년 여름

 

비로암, 산을 보고 물소리를 듣다

 

극락암을 나와 비로암(毘盧庵)으로 향하는 산길을 오른다. 조금 걷다 보니 숨이 찬다. 조금 전 극락암에서 극락세계를 엿봤다고 생각하며 뿌듯해 하던 것도 잠시, 이내 가쁜 숨을 몰아쉬는 걸 보니 역시 어리석은 중생일 뿐이라며 자책한다. 오르막이 계속되다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그 끝에 활수교(活水橋)라는 다리가 있다. 다리 아래 맑은 물이 쉬지 않고 흘러간다.

 

비로암은 생명의 근원인 과 인연이 깊은 암자다. 청류동으로 흐르는 계곡에는 통도사 8경인 비로폭포(毘盧瀑布)가 있다. 올해 유독 가뭄이 심해 물이 많지 않아 아래로 떨어지는 시원한 소리를 듣지 못해 아쉬웠다.

 

비로암은 이름처럼 비로자나불을 모신 암자다. 1345(고려 충목왕 원년) 영숙대사(靈淑大師)가 창건했다고 기록돼 있다. 1578(선조 11) 태흠대사(太欽大師)가 중건했고, 근래 암자 모습은 감원인 원명 스님이 불사한 것이다.

 

활수교를 지나 오르막 끝에 자리한 비로암은 영축산을 등지고 천성산을 마주하고 있다. 이곳으로 오다 만난 연꽃단지에서 바라보면 영축산 기운이 능선으로 세 갈래 나뉘어 이어지는데 그 가운데 두 개의 기운이 모이는 지점에 비로암이 있다고 한다. 나머지 하나는 자장암으로 이어진다. 영축산 기운이 모이는 이곳에는 예로부터 큰 스님 2명이 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곳 스님들은 비로암이 수좌(首座) 절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통도사 방장(方丈, 선원·강원·율원을 갖춘 총림의 최고 어른)을 지낸 원명 스님이 바로 경봉 스님의 상좌이기 때문이다. 원명 스님은 1952년 경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 후 군대생활 3년을 제외하곤 60여 년 동안 산문 밖 출입을 자제하며 수행에 전념해왔다. 스님은 그동안 28번의 안거(安居, 출가한 스님들이 한곳에 모여 외출을 금하고 수행하는 제도)를 했을 정도로 평생을 참선과 공부에 몰두해왔다.

 

또한, 요즘 암자를 중건하면서 스님이 머무는 요사채를 별도 공간에 따로 두는 경우가 많은데 비로암은 법당과 요사채 마당을 같이 쓰고 있다. 스님의 공간 따로 불자의 공간이 따로 있지 않다는 의미다. 원명 스님은 지금도 예전처럼 아침이면 직접 마당을 쓸며 도량을 정돈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고 한다.

 

비로암 여시문

 

보통 사찰의 첫 문을 일주문(一柱門)이라 하고, 두 번째 만나는 문을 천왕문(天王門)이라 한다. 비로암은 일주문 대신 천왕문을 먼저 만나게 된다. 천왕문에는 경봉 스님이 쓴 여시문(如是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여시(如是)이와 같다는 뜻인데 불교경전 첫머리에 붙이는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에서 따온 말이다. 부처의 말씀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여시문 입구 정면에는 금강역사가 그려져 있고, 안쪽에는 사천왕이 암자를 지키고 있다. 여시문 아래 커다란 호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보통 암자에서 보지 못하는 나무라 신기하게 바라봤다.

 

여시문으로 들어가면 본당으로 향하는 계단에 편액이 따로 걸려 있지 않은 문이 하나 더 있다. 문 안으로 비로암이라 적힌 편액이 걸린 본당이 보인다. 앞서 말했듯이 비로암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암자다. 모두 2곳에서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데 본당 비로자나불은 왼손 검지를 세운 채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고, 북극전(北極殿) 비로자나불은 왼손 검지를 구부린 채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다. 비로자나불의 수인(手印)을 지권인(智拳印)이라고 하는데 오른손은 법계, 왼손은 중생을 뜻하며 법으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가 있다. 두 불상의 차이를 눈여겨보는 것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비로암 본당 내부

 

본당에는 협시보살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액자로 소중하게 모신 탱화 2점이 눈에 들어온다. 원래 비로암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4호로 지정된 탱화 8점이 있었다. 현재 3점이 비로암에 봉안돼 있고 나머지는 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본당에 있는 석가모니후불탱은 1899(고종 36)에 그린 것으로 비단 바탕에 채색했다. 중앙에 석가모니불이 있고, 그 뒤로 불제자 4명 그리고 좌우 협시보살 4명이 그려져 있다. 옆에 있는 탱화는 후불탱화보다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구성으로 그려졌는데 극락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본당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석축 위에 북극전이 보인다. 통도사 산내 암자 가운데 칠성각을 북극전으로 높여 부르는 암자는 안양암과 비로암 두 곳이다. 북극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불단 뒤쪽에 칠성탱화가 있다. 비로암 칠성탱화는 백운 가운데 28수를 제외한 모든 성군을 그리고, 28수와 그 외 여러 성수를 청천에 나열하고 그 가장자리에 채운을 두른 특이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보통 칠성탱화에는 칠여래를 묘사하는데 비로암 칠성탱화에는 여래는 보이지 않고 도사들과 성군들만 보이는 점도 특징이다.

 

비로암 북극전 내부 칠성탱화

 

그런데 본당과 북극전을 들여다보면 여느 암자와 달리 금색으로 빛나는 단청이 눈에 띈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에만 유독 화려한 단청을 입힌 것은 분명히 불전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금을 입혔다고 해서 쇠 금()과 착각해 금을 바른 단청이라는 뜻이 아니라 금단청(錦丹靑)이 맞는 표현이다. 금단청은 가장 고급스럽고 화려한 단청으로 비단 자락과 같이 오색의 갖은 무늬를 써서 그린 단청을 말한다. 원명 스님이 암자를 중건하면서 특별히 신경 써서 단청을 입혔다고 한다.

 

비로암 전각은 우리나라 단청 양식을 골고루 보여준다. 본당과 극락전은 금단청으로 화려하게 꾸몄지만, 요사채인 무진장(無盡藏)은 무늬 없이 단색으로 칠한 가칠단청 위에 선만 그은 긋기단청 양식을 보인다. 부처가 머무는 곳과 사람이 있는 곳을 단청을 통해 구분한 셈이다. 또한, 본당 오른편에 종무소와 함께 있는 누각은 부재 끝머리에만 문양을 그려 넣은 모로단청 양식을 취하고 있다.

비로암을 둘러보면 곳곳에 경봉 스님의 글씨가 보인다. 여시문과 누각 외에도 요사채인 무진장에 걸려 있는 간부진(看不盡,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풍경), 연화승(蓮花勝, 훌륭한 좋은 인연) 편액 역시 스님 글씨다. 원명 스님은 은사였던 경봉 스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암자 곳곳에 남겨두고 싶었던 걸까. 암자 전체가 경봉 스님 글씨로 가득하다.

특히 본당 주련에 새긴 글은 경봉 스님이 극락암에 있을 때 원명 스님에게 직접 준 시를 보관하고 있다가 옮긴 것이라고 한다.

 

소리 전 일구의 원음이 묘한데

聲前一句圓音妙 성전일구원음묘

물질 밖의 삼산에는 조각달이 빛난다

物外三山片月輝 물외삼산편월휘

바람이 허공에 부니 뜬구름이 다 흩어지고

風吹碧落浮雲盡 풍취벽락부운진

청산에 오른 달이 한 덩어리 옥일런 듯

月上靑山玉一團 월상청산옥일단

방과 할을 퍼붓더라도 오히려 종을 이루지 못하고

棒喝齊施猶未宗 봉할제시유미종

삼현과 삼요라 하지만 여기는 그런 자취마저 끊겼도다

三玄三要絶孤踪 삼현삼요절고종

눈을 마주쳐 서로 전함은 생각 일어나기도 전일세

擊目相傳起念刻 격목상전기념각

 

비로암, 2017년 봄

 

주련을 읽어 내려가다 누각에 있는 관산청수(觀山聽水)라는 글을 발견했다. 역시 경봉 스님 글씨로 멀리 산을 보고 물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순간 성철 스님이 남긴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라는 법문이 떠올랐다. 두 고승이 같은 깨달음의 세계를 봤던 것일까?

 

비로암 맞은편엔 천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속으로 품고 있는 영축산 자락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착각마저 들었다. 비로암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천성산과 영축산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천성산은 영축산과 함께 불교의 성지다. 원효대사(元曉大師)가 당나라에서 건너온 스님 1천 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해 모두 성인이 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그 풍광을 마음 놓고 즐겨보라는 뜻 인양 암자 아래쪽에 의자가 놓여 있고 낮은 담장이 액자처럼 풍경을 담고 있다. 이곳 풍경은 운무(雲霧)가 넘실거릴 때 가장 멋있다고 한다. 입으로 관산청수를 되뇌며 멀리 있는 천성산을 한동안 바라봤다.

 

비로암에서 바라본 천성산, 2017년 여름

 

종무소 뒤편으로 가면 비로암 약수가 나오는 산정약수터가 있다. 그곳에도 경봉 스님이 남긴 수류화개(水流花開)라는 글씨가 커다란 비석에 새겨져 있다.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는 의미인데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우리는 깨닫지 못한 채 자꾸 어려운 길로 가려고만 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보고 물소리를 듣듯 물은 흘러가는 것이고 꽃은 시기에 맞춰 피는 것인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려는 중생을 꾸짖는 것 같다. 비석 뒷면에는 나쁜 마음을 버리고 청정한 마음으로 먹어야 모든 병이 낫는다는 말과 함께 영축산이 깊으니 구름 그림자가 차고(靈鷲山深影冷, 영축산심영냉) 낙동강물이 넓으니 물빛이 푸르도다(洛東江濶水光靑, 낙동강활수광청)’라는 경봉 스님의 법문이 글로 남아 있다.

 

비로암 산정약수

 

그러고 보니 비로암엔 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조금 전 북극전을 들렸다 출타를 준비하던 원명 스님을 우연히 만나 비로암이 어떤 암자인지 물었더니 요사채 앞 영지에 있는 물레방아를 가리키며 이라고 무심히 답했던 일이 이제야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활수교를 지나 암자에 이르러 산정약수까지 둘러본 뒤에야 스님이 말한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생명의 근원이자 자연의 이치인 물처럼 살아야 한다는 뜻을 물레방아를 가리키는 일로 우문현답(愚問賢答)한 셈이다.

 

비석에 적힌 대로 나쁜 마음을 버리자 생각하며 약수를 마시고는 누각 앞에 다시 섰다. 멀리 보이는 천성산을 굳이 마음에 담으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다 다음 순례를 이어가고 싶었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올 때보다 계곡 물소리도 더 잘 들린다. 구하 스님이 비로폭포를 보며 남긴 한시를 되뇌며 마지막 순례지인 백운암으로 걸음을 옮긴다.

 

은빛 물이 떨어지니 진주가 흩어지고

銀波落落眞珠散 은파낙낙진주산

해 아래 구름 없으니 골 안 가득 밝도다

日下無雲洞裏明 일하무운동이명

폭포에 햇빛 비치니 무지개빛 현란하고

射水陽光虹彩亂 사수양광홍채난

바위 꽃과 숲의 새는 춘정을 희롱하네

岩花藪鳥弄春情 암화수조롱춘정

 

비로암, 2017년 겨울

 

>>>⑯백운암, 구름 아래 펼쳐진 세상을 보다

 

이 글은 양산문화원 위탁을 받아 진행한 통도사 암자 순례책자 발간 사업에 제가 취재수록한 내용을 양산문화원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모든 저작권은 양산문화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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