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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동네 우물가에 사람들이 모여 시시콜콜한 동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단 우물가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늘 이야기를 끌어가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장터 국밥집에서, 빨래터에서 특유의 넉살을 부리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 주위에 모여 저마다 입을 보태 이야기를 흥미롭고 풍성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상황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에는 반드시 이야기 하는 사람과 이야기 듣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가 수직적이거나 강압적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스토리텔링이 일어나기 힘들다. 지역언론이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평적인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요즘에 그 역할을 온라인이 대신하고 있다. 이슈가 되는 글 아래에는 다양한 의견이 댓글 형태로 달리고, 자신이 공감하는 글은 다른 이와 공유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매체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시절, 사람들은 입과 입을 통해 이야기를 전파했다. 그리고 신문이 나오고, 방송이 나왔을 때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짧은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

 

'시민을 위한 도시 스토리텔링(김태훈, 도서출판 피플파워, 2017년 6월)'에서 저자는 도시 스토리텔링의 정의를 "도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필요한 성스러운 이야기를 발견 또는 창조하고, 이를 도시 구성원을 결속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보급, 확산, 내면화하는 일체의 활동"이라고 했다.

 

과거처럼 작은 공동체에서는 '말'이 유용한 이야기 전달 수단이었지만 보다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이야기 전달 수단은 '글'과 '영상'이다.

 

저자는 가상의 이야기가 공동체의 구심적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미디어를 통해 구성원들에게 구석구석 제대로 전달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야기는 그 자체로 힘을 갖고 있지 않다.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돼 공감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때 비로소 공동체를 결속시키거나 때론 갈등을 일으키는 변화를 가져온다. 낱개로 흩어져 있는 오늘 날 개인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서로를 확인하는 일은 옛 우물가나 장터 등이 사라진 결과다.

 

그 속에 미디어, 지역언론은 혼돈에 빠져 있다.

 

대중매체 시대가 열리고 난 뒤 옛 우물가, 장터의 역할은 언론이 대신해왔다. 그것도 아주 강한 영향력을 가지며 사람들의 일상을 좌우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언론에 대해 가지는 불신은 어느 때보다 크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화자다. '시민을 위한 도시 스토리텔링' 저자는 스토리텔링에는 화자와 주인공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전국 도시에서 펼쳐지는 스토리텔링 사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도시의 주인인 시민이 배제됐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오늘날 언론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 이야기꾼으로 신뢰를 얻지 못하는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도시의 주인인 시민이 빠진 이야기,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빠진 이야기를 끊임없이 전달해왔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역할을 해야할 지역언론이 지자체와 같은 권력기관의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흥미를 잃게 된 셈이다.

 

여기에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언론의 오만도 점점 설 자리를 잃게 하는 원인이다. 옛 우물가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의 입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얹어 살을 보태는 재미를 오늘날 언론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기존 언론매체 대신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이 이야기를 만들고 전파하는 일이 더 자연스러워진 이유가 아닐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우화가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권력자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은 언론 본연의 역할이다. 그것도 우화 속 주인공처럼 대나무밭이 아닌 광장에서 이야기를 외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권력과 자본에 길들어진 언론은 결국 나라와 도시의 주인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고, 공동체를 잇는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한 가지 고민은 지역언론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하는 문제다.

 

사실 지역언론은 기존 언론과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중앙집권적인 문화가 오랜 세월 이어져온 탓에 지역언론은 걸음마조차 떼지 못한 측면이 있다. 물론 이 말은 지역언론 입장에서 앞세우는 핑게일 수밖에 없다. 지역 공동체가 더 건강하고 결속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발굴, 창조하고 확산하는 일보다 당장 이익이 되는 권력자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지역언론이 권력자의 눈치를 보게 되면 결국 도시의 주인인 시민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지역언론은 대나무밭이 아니라 광장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

 

 

어쩌면 속으로 대나무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사람처럼

지역언론 역시 해야하는 일을 알면서도 속으로 외쳐왔던 것인지 모른다.

 

책 부제인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담론'은 공동체와 이야기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간명하게 요약하고 있다. 여기에 낱개로 흩어져 있는 개인과 개인을 잇는 역할을 지역언론이 해야한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말한다.

 

지역언론은 건강한 공동체가 이뤄질 수 있도록 주인공이 분명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언론이 말하는 이야기에 저마다 살을 보태 더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지역언론은 장터에서 구수한 사투리로 사람들 이목을 끌며 저마다 숨은 사연까지 털어놓게 만드는 이야기꾼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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