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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김주완, 산지니, 2012년)
때론 책장을 넘기기 힘든 책이 있다.
그 내용이 어려워 차마 이해하기 힘들어 헤메는 책을 접하는 순간, 책장을 덮고 싶은 충동이 들고 한다. 겨우겨우 책을 읽어내려가지만 머리속이 하얗게 변하는 경험을 하곤 한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편집국장(책을 쓸 당시에는 편집국장이지만 현재는 경남도민일보 출판미디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이 쓴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산지니, 2012년)'는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말 그대로 새로운 매체 환경을 살아가야 하는 지역신문 기자가 고민해야할 일상을 담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려운 내용이 아님에도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던 것은 책 표지에 커다랗게 새긴 '살아남기'라는 표현 탓이다. 2012년에 나온 책이고 오랜 전부터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이유다.
저자는 이미 5년 전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커뮤니케이션즈북스(주), 2007년)'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신문기자라는 직업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신문기자 앞에 '지역'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우리가 알고 있는 기자라는 직업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오랜 세월 중앙집권적인 문화를 이어온 탓일까? 지역은 서울의 눈으로 바라볼 때만 존재하고 지역 그 자체가 의미를 갖기 힘든 풍토가 만연하다. 이 가운데 지역 신문기자는 서울 중심 일간지 기자와 구분되는 일종의 상하 계급처럼 여겨지곤 한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지역 신문기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서울 일간지(사람들은 보통 중앙지라 부른다.)와 지상파 방송에 대한 많은 사례를 공부했지만 지역신문의 가치와 그 가치를 지키는 지역 신문기자와 관련해서 수업 시간 또는 교재에서 자세하게 소개하는 내용은 없었다.
저자는 전작을 통해 지역신문 기자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때 '살아가기'라는 표현은 SNS시대를 맞아 '살아남기'라는 말로 바뀌었다.
'살다' 또는 '살아가기'라는 말이 아닌 '살아남기'라는 표현이 주는 무게감은 나 스스로 양산시민신문에서 지역 신문기자로 13년 일해왔던 경험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막막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읽기를 시작하기 망설였는지 모른다.
전작에서 지역과 지역신문의 생생한 현장을 고발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기를 소망했던 저자는 이 책을 그 여정의 중간보고서라고 이야기한다. 앞서 "우리 신문이 하는 데까지 해본 후 도저히 희망이 없으면 장렬한 전사를 택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비장함을 내비쳤던 각오에 대한 실천보고서인 셈이다.
현재 경남도민일보는 왠만한 서울지보다 페이스북, 유튜브 등 SNS를 적극 활용하면서 전국적인 영향력을 갖춘 지역신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 역시 누적 방문자 수 수 천만명을 넘은 파워블로거다. 저자는 '블로그: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이란 블로거를 운영하며 신문에서 하지 못한 수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보통 SNS의 등장은 신문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저자는 SNS시대에서 '장렬한 전사'가 아닌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그것은 저자가 갖고 있는 언론관이 기존 언론과 다르기 때문이다.
책에서 저자는 기자를 '기사 세일즈맨'으로 부른다. 그리고 "기사는 기자들이 많은 비용과 노동력을 투입해 생산한 상품"이라는 "품질에 대한 자부심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하루에도 수많은 기사를 쏟아낸다. 그러나 SNS가 등장하기 이전만 하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기사를 유통하고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는 '지면'이 유일했다.
언론은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다.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실천해왔다. 저자 입장에서 보면 SNS 시대는 기자 스스로 자신의 기사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통로를 발견한 셈이다. 종이 신문 구독부수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신문 영향력 역시 하락하고 있다. 신문의 위기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매체 특성을 파악하고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전작에서 신문사에 민원실을 설치해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는 생각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기자가 기사 세일즈맨이 돼야 한다는 표현은 SNS시대를 맞은 언론이 해야할 일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다. 권위에 사로잡혀 마치 불가침의 영역처럼 스스로를 생각하는 언론은 어느 새 '기레기'라는 조롱을 독자에게 받고 있다. 세상과의 소통을 강조하면서 정작 스스로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언론이 오히려 독자에게 외면받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독자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고민한 결과를 하나하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함께 고민해보자고 말한다. 지역밀착과 공공저널리즘을 기반으로 지면에서부터 시작한 변화와 그것을 SNS로 확산하는 과정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외국 지역신문 사례를 비교하며 대한민국 지역신문이 가지 못하고 있는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저자가 책 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중간보고서' 성격의 책은 아직 성공과 실패를 이야기하기 이르다. 하지만 점차 외면받고 있는 신문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함께 고민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개인적으로 언론은 길을 여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길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다니는 곳에 작은 길이 생긴다. 언론은 그 첫걸음을 내딛는 역할일수도 있고, 이미 사람들이 지난 곳을 다시 걸으면 길의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어떤 역할이든 결국 사람이 있는 곳에 언론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언론은 어떤 사람이 길 위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사람을 떠나 언론 스스로 존재한다는 권위와 배타성이 오늘날 우리 언론을 망치는 주범이다.
언론은 시민에게 부여받은 권력이다. 언론 스스로 권력을 자처하는 순간, 언론은 사람들로부터 멀어진다. 저자가 말하는 SNS 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는 방법은 결국 사람에게 다가서자는 또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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